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충청의창]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새벽에 글밭을 가꾸고, 글을 배달하기 시작한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운명이 나를 버린 것 같은 고립감과 좌절감을 글로 표현하면서 마음 속 켜켜이 쌓여있던 먼지를 하나씩 털어냈습니다. 갈피갈피 끼어있던 때가 벗겨지고 탁했던 마음이 시나브로 정화되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에게 조금씩 더 정직해지면서 안정감과 평안이 생겼습니다. 내 마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내 몸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매일 아침 한 편의 글은 당신이 사는 집 앞에서 창문을 노크하는 순간 더 큰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시리고 아픈 적이 한두 번 아니었지만 글밭을 가꾸고, 그 글밭을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것, 누군가가 글밭에서 서성거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입니다. 시를 쓸수록, 글밭에 주옥같은 글들이 가득할수록 내 마음은 여리고 순해졌습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연정도 깊어만 갔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엄연해졌습니다.

삶이 고되고 힘에 겨울 때도 글밭을 가꾸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뒤척일 때도, 온 세상이 어수선할 때도 새벽마다 기침을 하며 언어의 서랍을 열었습니다. 지나온 날의 상처를 보듬으며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금맥을 캐듯이 하나씩 언어의 파편들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꽃이 되고 나비가 되고 햇살이 되고 바람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풍경, 희망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묻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매일같이 글을 쓰는데, 비결이 무엇이냐고. 비결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의 삶과 나의 생각과 나의 꿈을 글로 담는 것이 일상일 뿐입니다. 새벽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제 때 밥숟가락을 들지 않은 것처럼 허전합니다. 매 순간의 상처와 영광을 기록하지 않으면 가슴이 썰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세요? 지나온 나의 삶을 엿보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데 글쓰기 만 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간절한 희망을 담는 데는 글밭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내 인생의 노둣돌이죠. 그래서 연필은 지적광산이라고 했지요.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금맥을 캐는 광부의 심정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쉽지 않기에 진정한 내 편,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돕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시를 쓰는 새벽이고, 글밭을 가꾸는 시간이며, 하나씩 배달하는 마음입니다. 불모의 땅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게 새벽에 글밭을 가꾸는 일은 ‘희망’이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이른 아침, 산으로 가는 길에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니 숲길이 환해졌다. 싸리꽃이 지더니 밤꽃이 몸을 풀기 시작하고, 매밥톱꽃은 숲 그늘에 앉아 어서 오라며 입술을 내민다. 소나무숲길, 참나무숲길, 아카시아나무길을 지나 산초나무 새 순에 초록물이 오르더니 길이 되고 대지의 노래가 되고 하나의 풍경이 된다. 숲속의 악동들은 햇살 쏟아지는 유월의 아침을 열기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뒤척였을까. 진정한 삶과 아름다움을 위해 연장을 들어야겠다. 가던 길 머뭇거리지 말고 가야겠다.”

오늘은 이렇게 유월의 아침을 글로 담았습니다. 글밭을 가꾸는 것은 상처를 보듬는 일이고, 꿈을 연마하는 일이며,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밭을 가꿉니다.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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