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국민들이 비통에 빠졌다. 퇴임한 지 1년3개월여 밖에 되지 않은 전직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3일 오전 서거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tv나 라디오를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였고 충북 청주와 충주, 제천과 충남의 천안·아산 지역 시민들은 곳곳에 전달된 충청일보 호외(號外)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틀 째인 24일에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몇몇만 모이면 논쟁이 벌어지는 등 국민들이 당분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자칫 대한민국 전체가 '대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말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노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남긴 유서의 일부다. 짤막한 글에서 참 많이 힘들어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청렴'이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고 견디기 힘든 압박으로 작용되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며 한국 정치에 큰 획을 그은 고인은 '풍운아'였고, 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의 꿈을 접고 부산상고로 진학했고, 고교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잠시 판사의 길을 걷다가 인권 변호사로 전직했다. 노동자와 학생들의 편에 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다가 '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됐지만 13대 총선에 출마, 당시 실세였던 허삼수 후보를 꺾고 정치에 입문했다. 초선의원이면서도 5공 청문회에서 정연한 논리와 송곳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가 됐으나 이후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1998년 보선에서 서울 종로에 도전, 금배지를 달았지만 2000년 총선에서는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우고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고배를 마셨다. 이를 계기로 '바보 노무현'이란 닉네임을 얻었고, 결국 거센 '노풍'으로 이어져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도 일으켰다.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수많은 '성역'과 '금기'에 맞서면서 바람 잘 날이 없었지만 퇴임 후 불거진 박연차 게이트는 그의 유일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퇴임 전 "농촌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 그 역시 전직 대통령들의 굴곡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 더 이상 반복돼선 안돼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차려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조문객 가운데 상당수는 '노사모' 회원 등과 함께 대형 스크린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담은 영상물을 보거나, 촛불을 밝히며 비통하게 밤을 새우기도 했다. 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한승수 국무총리 등이 봉화마을을 찾았지만 조문조차 못했고,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는 발로 밟히고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봉화마을 주민이나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 등이 충격과 비통, 혼란에 휩싸여 있는 등 한마디로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대형 사건 뒤에 늘 따라다닌 말이지만 이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반드시 우리의 '후진적 정치문화'가 개선돼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돈 문제로 퇴임 뒤 구속 수감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정치 현실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국가 이미지와 신인도에 더 할 수 없는 악영향만 끼친다. 정권이 끝나면 전 정권에 '정치보복'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사태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 또 다시 재연된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는 후진국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헌섭 교육문화팀장

▲ 김헌섭교육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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