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오병익 칼럼] 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학교비정규직 파업으로 급식소와 돌봄 교실이 사흘 동안 닫혔었다. 아이들은 빵·우유 등 대체된 점심 사연을 알지 못한 채 별식처럼 좋아했다. 학부모는 반복될 경우를 더 우려했다. 막판 교육부 후속 조치도 아직 진통 중으로 들린다. 그러던 학교가 방학에 드니 남겨진 정규·비정규 과제의 잠재적 압박보다 자녀·부모 간 방학계획 합의를 주목하게 된다. 대부분 협상 아닌 일방 통첩이어서 손발부터 시리다.

필자가 열 살 되던 해 여름방학, 어머닌 달랐다.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는 조건을 달아 서당교육인 '동몽선습'을 익히게 하셨다. 대뜸 이름 석 자를 물으신 훈장님은 “방학인데 놀지 않고 뭣 하러 왔어? 고얀 놈” 면접 후 곧바로 정식 학동이 됐다. 20일 동안 하루 한 시간 반 교육과정으로 유교적 예법과 역사를 배웠다. '하늘 땅 사이 만물 가운데 오직 귀한 게 사람이니.....' 주문(呪文)처럼 따라 읽으며 하품 반 졸음 반으로 죽을 쒔으나 히스토리를 꿰고 있는 ‘고얀 놈’은 의미와 달리 평생 나를 성장시켰다.

요즘엔 어떤가? 안타깝게도 자녀들 강점과 적성을 아랑곳 않고 섣부른 욕심만 넘친 착각에 혼란스럽다. 어차피 경쟁을 피해 살긴 어려우나 왜 꼭 방학에 유독 버거운 전쟁 선포일까. 시간만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유아 때부터 마을 도서실·시립도서관을 책 구경 하러 드나들던 초등학교 6학년짜리 하루 독서량이 지금은 무려 60권으로 불어난 사례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책 구경, 도서관에서 놀자’였다. 다른 사람 모두 책 속에 빠져 있으니 흉내 내다가 조금 씩 책 맛을 느낀 자연스러움 아닌가. 독서는 특별한 사교육도 필요 없다. 사람 되는 최상의 공부다. 읽다가 그만둬도 괜찮다. 몇 쪽 짜리 얄팍한 책부터 서서히 단계를 높일 때 멀미를 잊는다. 책에 빠질수록 다시 들춰야 할 세상의 재발견까지 확대된다. 쾌속으로 질주하는 변화 시대, 조화로운 인생 환기(換氣)에 책을 추월할 마중물은 없다.

‘과열 주의보’, 방학 붕괴의 대표적 신드롬이다. 방학은 아이들 전부인데 무슨 점수를 올려야 한다며 여러 개 프로그램에 밀어 넣는 부모를 보면 끔찍하다. 지나친 욕구수준 상승은 좌절과 반항 그리고 극단주의 수반을 몰라서도 아니다. "안 돼" 타령으로 감시만하는 경우 정신고장 원인이 된다. 친구들과 어울리려 해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며 정말 중요한 인성의 끈을 잘라놓고 있다.주먹구구라서 부모 권위조차 흔들린다.

아이를 찬란하게 키울 상위 개념 ‘인정·응원·기다림’ 결코 허툰 소리가 아니다. 아이들은 마을과 산·계곡을 종일 달려도 여간해서 지치지 않는다. 까만 염소 꼴로 ‘매앰 매앰’ 나동그라질 때 ‘방학 찬가’는 힘을 낼 수 있다. 땅이 구멍 나고 하늘이 뚫리도록 마구 뛰고 소리 질러도 괜찮을 권리, ‘자신감 충전’에 답은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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