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호사회팀장

지난주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와 추모열기로 이어진 또 다른 '노풍(盧風)'을 보았다. 2002년 대통령선거 때 거세게 불었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의한 노풍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지도자로 선택하기 위한 뭉침이었다면 이번에분 노풍은 극단적인 선택에 자신을 던지며 항거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회한이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 때 "당신들이 뭘 잘했다고 대통령을 함부로 탄핵하느냐"며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킨 야당에 등을 돌리고 집권당에 표를 몰아준 탄핵역풍이 제2의 노풍이었다면 이번 노풍은 주말 아침, 다른곳도 아닌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힘들 때 찾아가 기대던 고향집 뒷산에서 가장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회한·안타까움


2009년 노풍은 지금까지의 개인 '노무현'을 바라보는 우리들 시각을 완전 바꿔놓았다. 서거 직전 뇌물수수 혐의로 인터넷 상에 '뇌물현'으로까지 부르던 비아냥이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갔다. 대신 "노무현은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인데 우리가 그걸 몰랐을 뿐"이라는 자책 아닌 자책, 반성 아닌 반성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도 노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5년을 잃어버린 세월이라며 한스러워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온통 세상을 뜬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바람만 거세게 일었다.

재임 중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전직 대통령이 살아 생전 그렇게 호되게 질책을 받을 때 등을 돌린 걸 후회하기라도 하듯, 마치 몰이사냥으로 몹쓸 사람으로 만든게 미안하기라도한 것처럼 그가 가고 난 뒤에는 미사여구(美辭麗句)만 이어지고 있다. 이념과 노선을 같이 하는 동지든 아니든, 그와 대립각을 세우며 사사건건 부닥쳤던 경쟁자든 예외가 없었다.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찼던 인간에서 화해와 원칙을 중요시 하는 인물로 부각됐고 권력의 변방, 변두리 정치에서 맴돌던 탓에 정치가 뭔지 몰랐을 비주류 대통령에서 하루아침에 소탈한 서민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망자(亡者)에 대한 예우로만 보기에는 주변 인심이 손바닥 뒤집 듯 너무 쉽게 변했다. 냄비처럼 쉽게 데워지다 금방 식고, 어제와 오늘이 다른 세상인심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쓰레할 뿐이다.

오히려 여전히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거(逝去)가 아닌 자살(自殺)"이라는 '언어 비수(匕首)'를 내리꽂는 몇몇 논객들의 굳센(?)비판이 지조처럼 보일 정도다.

무섭고 엄숙한 선례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은 어땠는지 되돌아봐야 되는데 그 중 언론을 빠뜨릴 수 없다. 검찰의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가 무리수를넘어 꼬투리잡기 아니냐는 시중의 비판을 애써 외면하고, 어디가 끝인 줄 모른 채 하나 둘씩 흘러나오는 지엽적인 사실을 중계방송하는데 적잖은 지면과 화면을 내주었다.

그러다보니 뇌물수수 의혹이라는 본질을 떠나 전직 대통령 망신주기라는 볼멘 소리까지 나왔지만 역시 언론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더니 지금은 아예 '노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는 죽음으로써 영원한 삶을 살게됐다. 가면서 무섭고 엄숙한 선례를 남겼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자신있게 도덕성을 외칠 수 있을지, 그 도덕성에 흠집을 입었을 때 어떤 결과까지 감수해야 하는 지 보여줬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은 숙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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