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충청의 창] 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여봐라, 어둠이 가고 새벽이 왔는데, 북풍한설이 가고 새 봄이 왔는데, 궁궐은 아직도 어둠이구나. 세상은 여전히 싸늘하구나. 내 몸도 성치 않고 백성의 아픔은 여전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전하, 듣자하니 충청도 초수리에 산초같이 톡 쏘는 신비한 물이 있다 하옵니다. 오랫동안 조정의 일에 힘써 왔으니 하루속히 그 아픔을 치료하셔야 합니다. 어서 초수리로 가시지요. 그곳에서 씻고 마시고 씻고 마시고 근심걱정 날려 보내옵소서.

초수리에 신비한 물이 있다고? 그래 가자. 가서 병도 고치고 백성들도 만나고 못다 한 일고 하고 신나게 놀아보자. 세종대왕 납시오. 세종대왕 납시오. 신비한 물 초정리에 세종대왕 납시오. 상서로운 복이 하늘로부터 왔으니 조선의 서원 땅에 맑은 물 솟구치네. 신령스런 물줄기 흘러 흘러 하늘에서 은하수가 내려온 듯 신선의 마을이 바로 여기로구나.

산초처럼 톡 쏘고 시원한 물 한 모금 향기롭고 달콤하네. 내 몸에 별이 쏟아지네. 북숭아꽃 오얏꽃 여기는 꽃들의 낙원. 높고 푸른 산, 푸른 물줄기 흘러 흘러 풍요를 노래하네. 초수에 옥이 발견되니 조선의 악기를 만들고 책 읽는 소리 글 짓는 풍경, 소리마다 샘물처럼 하늘높이 치솟고 가나다라마바사 어진 임금 백성에게 한글을 가르치네.

물마시고 등목하고, 물마시고 등목하고 약수로 술을 빚어 온 동네가 춤과 노래. 아이들은 술래잡기, 어른들은 풍즐거풍. 하늘처럼 땅처럼 생명의 합창 대지의 울림. 우주를 품었으니 태평성대 따로 없네. 풍악을 울려라. 신비의 물 초수의 샘물 마시며 만백성 만만세 우리나라 좋을시고. 풍악을 울려라, 풍악을 울려라….

1년 전, 나는 세종대왕 초정행궁의 풍경을 이렇게 스토리텔링 시로 표현했다. 이 글은 ‘나랏말싸미’라는 제목으로 노래가사가 되었다. 청주의 퓨전음악그룹 ‘예화’가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축제 기간 중 초연했다. 이에 앞서 세종대왕의 초정행궁의 발자취를 한 권의 책으로 펴내고 세종대왕 100리 콘텐츠를 개발했으며 세종대왕 초정르네상스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일에 매진했다. 이와 관련된 책만 10권이나 펴냈다. 이 중 「생명의 숲 초정리에서」는 문화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서귀포시의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는 새 문자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새 문자를 열심히 익혀 사가의 여인들에게도 퍼뜨려라.” 영화 <나랏말싸미>를 보는 내내 가슴 뭉클했다. 한글창제의 시대적 요청을 완수하기 위해 소현왕후와 세자를 데리고 초수리(초정리)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울컥했다. 오랫동안 세종대왕 초정행궁의 비밀을 찾아 나선 것이 헛되지 않았으니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자명해졌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창제의 숨은 이야기를 세종대왕과 신미대사를 통해 재해석 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것이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의 시대에 이보다 더 값진 보석이 있을까. 이제는 세종대왕 초정행궁의 이야기를 드라마와 다큐로, 춤과 노래로, AR·VR로, 교육과 힐링콘텐츠로 특화시켜야 한다. 세종은 노벨상 수상에 버금가는 창의적인 일을 22개나 만들었다. 지식배양, 인재양성, 시스템경영을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세계 만방에 확산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