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주말 가까운 데 바람도 쐬고 모바일 커피 쿠폰도 쓸 겸, 전망이 좋다는 세종 호수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 갔다. 3면이 유리로 된 2층 카페에서 있다 나온 뒤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카페에 있는 동안 소낙비도 한 차례 내려 더위가 살짝 가라앉았다. 반시계 방향으로 호수를 돌다 카페에서 보이던 숲속 정자에도 올라보고 내려와 다시 호수를 걸었다. 걷다 보니 저 앞쪽에 동상이 하나 보였다. 인터넷과 방송에서 이미 봐와서 멀리서도 '평화의 소녀상'인 줄 알 수 있었다.

이 소녀상은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일제강점기 강제로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겪었던 인권 유린의 상처를 오랜 세월 홀로 마음 속으로 앓다 용기를 내 꺼내어 준 조선의 위안부 할머니에게 바쳐진 작품이다.

작품을 직접 보기 전에는 그냥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상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작품에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복 입은 소녀의 단발은 댕기머리였다가 일본에 징집될 때 짧게 뜯긴 머리를 표현한다.

의자에 앉은 소녀의 의연하게 쥔 주먹은 꽃다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은 소녀가 할머니가 돼 내어놓은 일본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을 담고 있다. 작품 제작 당시 일본으로부터 제작 중단 요구를 듣기까지 하자 작가는 소녀의 손을 다소곳하게 모은 모습에서 굳게 쥔 주먹으로 바꿨다고 한다. 

소녀는 의자에 앉아서도 까치발을 하고 있다. 나라를 잃고 비참한 수모를 겪은 천진한 소녀가 제대로 된 가해자의 사과도, 제대로 된 조국의 보호도 받지 못 한 채 오히려 죄인처럼 안타깝게 움츠려 지내야 했던 심정이 발뒤꿈치에 실렸다. 

소녀의 어깨 위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아직 살아남아 계신 위안부들과 이미 세상을 떠나신 위안부를 하나로 연결시켜준다.

의자 뒤로는 어느새 할머니가 된 소녀의 회색빛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다. 할머니 실루엣 가슴에 앉은 흰나비는 위안부들이 지난 상처를 벗고 이제 나비처럼 훨훨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는 기원의 상징이다. 

소녀 옆에는 빈 의자가 하나 더 있다. 한 맺힌 삶을 이미 마감한 수많은 저 세상의 위안부를 배려한 자리다. 동시에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앉아 잠시나마 그분들의 마음을 느껴보도록 마련된 자리다.

세종시 소녀상 뒤에는 검은 대리석 부조가 병풍처럼 세워져 있다. 부조에는 지치고 무기력해 표정도 없는 한국인 위안부들이 새겨져 있는데, 맨 오른쪽 위안부는 성 착취로 임신이 된 배를 불룩하게 내민 채 힘없이 뒤로 몸을 젖히고 있다.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검색해보니 같은 이미지 사진이 있었다.

'1945년 전쟁에서 생존한 한국인 위안부들'이라고 적혀 있다.

조각에는 없지만 사진에는 힘없이 늘어진 위안부들 옆에 총을 들고 웃으며 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 군인도 있다.

세종 호숫가 '평화의 소녀상'을 보고 온 뒤로는 꽃다운 청춘이 무참히 짓밟힌 소녀들 곁에서 태연히 웃고 있는 사진 속 군인이나 위안부 문제는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며 불편함을 무심히 외면해 온 나나 위안부 소녀의 her-story가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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