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살며 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이제 더위도 물러나 아침저녁 바람이 선선하다. 꽤 더웠던 7월, 양양 미천골에 갔을 때다. 휴양림 안내도에 정자가 있다고 나와 있었다. 요즘은 어딘가 갈 일이 있으면 근처 정자를 둘러보고 있어 미천골 정자도 보고 싶어 찾아가보았다. 미천골은 평지처럼 완만한 계곡이 7km가 넘게 산 깊숙이 이어진다. 계곡 꽤 깊은 곳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만 오토캠핑장부터는 비포장임도라 차를 밖에 세워두고 걸어 들어갔다. 길 위에 나무에서 떨어진 가느다랗고 길쭉한 갈색이 된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비온 뒤라 축축하게 젖은 모양이 영락없이 뱀이나 지렁이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마침 가느다란 뱀 한 마리가 사람이 다가오니  스르르 숲으로 몸을 숨긴다. "윽"

 
조금 더 걸어가니 정자가 보였다. 팻말에 '미천골정'이라 적혀 있다. 전통 한옥 정자도 아니고 정면에는 플랜카드까지 걸려 있어 정자 자체는 운치가 그다지 안 느껴졌다. 사진을 찍을 때도 플랜카드가 기둥에 잘 가려지는 각도로 해서 찍었다. 정자 바로 옆에 보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있었다. 걸어오면서 계속 계곡을 내려다보기만 해서 정자에 들어가 보기 전에 얼른 계단으로 내려가 보았다. 하얗고 커다란 바위들이 생긴 대로 자연스럽게 널려있다. 계곡은 점점 깊어지고 운치도 더욱 그윽하다.

 
계곡 안쪽으로 둘러보는데 폭포가 눈에 띄었다. 상직폭포다. 미천골을 따라 들어오는 동안에도 몇몇 멋진 폭포들을 보긴 했지만 다른 폭포들은 수직으로 길게 한줄기로 흐르고 있던 것에 비해 상직폭포는 지그재그로 이어진 바위에 부딪치며 넓게 퍼져나간다. 낙화하며 만개하는 하얀 계곡花라고 할까. 상직폭포 비경을 마주하니 왜 바로 여기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지 알 것 같다.

 
폭포 맞은편에는 텐트를 치거나 자리를 펴놓고 폭포를 감상하게끔 바닥을 평평하게 다져놓은 곳도 있고 누가 쌓아놓았는지 조그만 돌탑도 있다. 나도 눈으로는 계곡 풍광을 담고 귀로는 맑은 물소리를 길으며 한동안 그렇게 폭포에 마주 앉아 있었다. 계곡에서 올라온 뒤에야 미천정에 들어가 보았다. 폭포 쪽을 바라보는데 앗, 계곡 아래서는 안 보이던 폭포의 긴 자태가 드러났다.

 
상직폭포는 높이가 70미터나 되지만 폭포위쪽은 숲 안쪽으로 들어서 있어 무성한 나뭇가지에 가려진데다 폭포면도 약간 옆으로 돌아서 있어 계곡 아래서는 잘 보이지 않다가 길 위 약간 측면에서 폭포를 향하고 있는 정자에서는 계곡 아래서는 가려져있던 폭포 위쪽이 정면으로 마주보인 것이다. 대신 무성한 나뭇잎들로 폭포가 끊겼다 이어지곤 하였다. 낙엽이 진 후면 폭포의 자태가 더 훤히 드러날 것 같다.

 
상직폭포는 계곡 입구에서 상직소까지 7.3km나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 메기, 산천어 등이 폭포가 길고 수직이라 더 오르지 못한 데서 유래하였다 한다. 정자 위에 걸린 나무 팻말에는 "山光澄我心(산광징아심)" 글씨와 해석 "산의 풍광이 내 마음을 맑게 해준다."가 새겨져있다. 나무와 바위, 맑은 물로 빚어낸 상직폭포의 비경,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끌린 발걸음이 자연에게서 받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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