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장 초승달 아래서
| ▲ <삽화=류상영> |
모산에서 태어나 아이들도 둥구나무를 통해서 처음으로 세상을 본다.
엄마의 등에 엎여 바깥나들이를 하다 어른 대여섯 명이 손끝을 잡고 감싸야 할 만큼 허리가 굵은 둥구나무를 보게 된다. 동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둥구나무를 지나쳐야 들판이며 또랑을 가로막고 있는 방천을 보게 된다.
제법 걸음마 실력이 늘어서 아장아장 걷는 나이가 되면 둥구나무 밑에까지 걸어가서 너럭바위에 올라가 놀기 시작한다. 나이가 예닐곱 살이 되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지 않아도 저 혼자 둥구나무에 올라가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스스로 터득을 한다.
세월이 흘러 남자 아이들은 코밑에 수염이 거뭇해지고, 여자들은 공동우물로 물 길러 가는 것이 쑥스러워지는 나이가 되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둥구나무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른이 되고 가족을 이루면 모산사람들은 시나브로 둥구나무와 동체가 되고 만다.
어른이 되어서 볼일을 보가나 인척의 길흉사에 참석을 하기 위해 잠시 출타를 하는 길에도 둥구나무를 동네 초입에 서 있는 장승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학산 장날마다 쇠전거리 앞에서 고무신 장사 하는 갑식이라고 있잖유, 갸가 지하고 육촌지간 아뉴. 갑식이 처가 읍내 의원에 입원을 했다고 해서 가는 질유."
"구장 말이 면사무소 장 서기가 날 좀 보자고 하는데 먼 일인지 모르겄슈."
"요새 콩 한 말이 을매씩 하는지 모르겄구먼."
"지난 장날 시세가 구백 환씩 하든 것 같드만. 메주 쓸 때도 안직 멀었는데 먼 놈의 콩 시세는 묻는겨?"
"자식들이 냘은 어떤 일이 있드라도 사친회비를 달라고 하는데, 메주콩이라도 내다 팔아야지 당최 들볶여서 못 갈겄구먼."
출타를 하는 사람들은 둥구나무 밑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왜 자신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이유를 말해주는 건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사였다. 서볼 일을 보고 귀가를 할 때도 둥구나무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외지에 나가서 본 볼 일을 잘 보고 못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소상하게 설명을 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간다. 그래야 볼일을 봤던 일이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마무리가 되지 않은 일들은 앞으로라도 잘 풀려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모산 사람들은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털어 놓는 것이 아니고 느티나무에게 말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둠이 걷히려면 아직 두어 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도 박태수는 길게 하품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새벽바람이 차다. 갑자기 찬바람을 맞으니까 몸이 진저리를 친다. 방에서 머리 위에 건성으로 얹고 나왔던 카키색 군용털모자를 눌러썼다. 귀마개는 동여매지 않고 미제야전잠바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렸다.
날 한번 좋겄구먼. 바람이 읎는 걸 봉께 참깨 씨 뿌리기는 참 좋겄어.
박태수는 별들이 총총하게 박혀 있는 하늘을 쓰윽 쳐다보고 나서 뒤안으로 들어간다.
뒤안에는 부피만 부풀려서 엉성하게 묶은 북데기 다발이 쌓여 있었다. 북데기 다발을 옆으로 밀어젖히니까 알맞은 크기로 쪼개서 쟁여 놓은 장작더미가 나타났다. 일삼아서 시오리나 떨어진 큰재 넘어 범골에서 참나무를 베어 만든 장작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