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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후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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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8  16: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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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동장

한밤중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울란바토르 불빛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몽골하면 먼저 유목민과 게르 정도만 상상되는데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빌딩도 많고 아파트도 많았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14배인데 인구는 316만 명으로 울란바토르에 반 이상이 살고 있다니 면적대비 사람이 귀하다 싶다. 그 느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도로를 달리며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초원뿐이다. 초원에는 가축들만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게르가 보이는데 그 옆에 서 있는 승용차가 왠지 낯설고 부자연스럽다.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옆에는 온천지가 야생화로 덮여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아무렇게나 흐드러진 야생화에 푹 빠져본다. 이 나라에선 무료로 국유지를 개인에게 0.7ha를 준다는데 여기서 야생화나 키우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자이승 전망대를 오르자 울란바토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톨강과 주변 자연환경이 확 들어온다. 몽골군과 러시아연합군이 일본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그림 속에, 패전한 일본 욱일기가 땅바닥에 짓밟히고 있었다. 현재 한일 과거사로 갈등이 심해진 터라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전망대 밑에는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이며 의사인 이태준 기념관이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정문 앞의 태극기가 눈에 확 들어온다. 독립운동자금을 운반하고 제공했으며 몽골국왕의 주치의로도 활동한 몽골의 슈바이처였다고 한다. 38세에 요절한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을 나오면서 자랑스러웠지만 아쉬운 마음 또한 컸다. 몽골과는 1990년도에 수교를 했고 현재 우리나라에 와 살고 있는 몽골인이 3만 명이며, 취업과 학업으로 와 있는 사람은 3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유대가 깊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몽골에 3천 명 정도 있다고 하니 더 그렇다.

필자가 몽골 여행을 결정했을 때 제일먼저 생각난 것은 10여 년 전에 읽었던 대하역사소설 ‘칭기즈칸’이다. 테무친은 9살 때 아버지를 잃고 들쥐를 잡아 먹어가며 연명했었다. 어린 테무친이 대제국을 정복한 칭기즈칸이 되는 일대기를 쓴 소설로 너무도 감명 깊게 읽었었다. 책을 읽으며 언젠가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는데, 테무친이 죽음을 걸고 싸워서 세운 나라를 직접 가본다는 의미 컸다.

‘칭기즈’는 몽골어로 빛의 신을 의미하고 ‘칸’은 유목민족 군주의 칭호이다. 그림자 말고는 친구가 없던 테무친이 대제국을 이루어, 지금 필자는 칭기즈칸의 거대한 동상 앞에 서있다. 그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고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며 자신을 다스리며 극복했었다. 집안을 탓하지도 말고 가난이나 나라도 탓하지 말라던 그의 강인한 정신력이 오늘의 몽골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화려하고 웅장함은 없지만 마음의 여유와 초원의 야생화처럼 소박하고 소중한 마음을 담아온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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