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장 초승달 아래서
| ▲ <삽화=류상영> |
"오늘이 메칠여?"
김춘섭은 박태수가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서 입에 물고 하늘을 바라본다. 장작을 지게에 얹기 전만해도 하늘에 별이 총총하게 박혀있었다. 어느 틈에 뿌연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고 몇 개의 별들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양력으로 초이렐껴?"
"오늘 까지는 사친회비를 꼭 줘야 하는데 큰일났구먼."
"선거 기간 동안은 사친회비 독촉을 안하드니 선거가 끝낭께 부쩍 독촉을 하는 거 가텨."
"그 집 아들들은 사친회비 다 줬겄지? 상규 엄마가 빈틈읎는 사람잉께 어련하겄어."
"안직 안 준거 가텨. 어지 아침에만 해도 상규 놈이 사친회비 안주믄 학교 때려치우겄다며 징징 거리던 걸. 우리집은 워티게 된 것이 꺼구로여. 진규는 여태껏 뭘 안준다고 징징거리는 꼴을 단 한번도 못 봤어. 그란데 큰 자식인 상규놈은 삼학 년짜리 지 동생 보기도 남부끄럽지도 않은지 툭 하믄 눈물 타령이랑께."
"질질 짜는 자식 탓하기 전에 지 때 사친회비를 못 주는 부모 잘못이 크지 뭐."
"요새 사친회비가 대체 얼마여? 난 이날 이때까지 자식들한테 내 주머니에서 돈 끄내 줘 본 적이 읎어서 큰 놈이 육학년이 되도록 안직도 사친회비가 얼맨지도 몰라."
박태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안채와 앞에 부모님이 기거하는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맞은편에 뒷간과 헛간이 붙어 있는 초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네 식구야 똑 소리 나는 사람잉께 자네가 집안 살림 거둘 필요는 읎겄지. 우리집 식구는 물러 터져서 돈이 들어오믄 들어오는데로 써 재끼고, 읎으믄 읎는데러 곰탱이처럼 참고 있응께 그기 문제지."
김춘섭은 담배가 손가락 마디 한 개 정도 남았는데도 일어섰다. 담배를 입에 물고 지게를 졌다.
"돈이라는기 쓰라고 있는 거지. 집구석에 모셔만 두는기 돈이라믄 그기 돈이여. 상전이지."
박태수도 담배를 입에 물고 지게를 졌다. 집 뒤안에서 지게를 졌을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느낌 속에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요새 이 동리서 배 뚜드리며 살만한 집이 이 집 벢에 읎을껴."
앞서가는 김천섭이 동네 어귀에 있는 해룡네 집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지게작대기를 수평으로 눕혀서 양손으로 가슴에 품고 나가다가 불이 꺼져 있는 해룡네 집을 가리켰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이 있잖여. 해룡네도 선거 때 대목 봐야지 언지 대목 볼껴."
박태수는 울타리도 없이 한뎃집인 해룡네 집 앞을 지나서 방천에 도착했다
국도로 가는 진입로 쪽으로 들어선 박태수와 김춘섭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 시작한다. 모산에서 학산 양산간 국도까지 가는 거리는 반 오리다. 도로 폭이 우마차 두 대가 겨우 비켜 갈만 한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나란히 가다가는 자칫 실수하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또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로 부는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걷다보면 국도가 나올 것이다. 그 때가지는 앞서가는 사람의 장딴지만 쳐다보면서 걸어가야 한다.
벌똥골 앞에서 길이 타원형으로 굽어지면서 또랑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았다. 길 왼쪽으로는 보또랑이다. 보또랑은 국도를 통과해서 금강 상류인 양산강까지 이어 진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