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사이에 단연 화두가 됐던 '잔인한 달 5월'이 지났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각종 기념일이 몰려있는 데다 결혼식 등 워낙 행사가 많아 월급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직장인 가장들이 심각한 '금전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시즌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더욱이 지난 해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로 인해 각계의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실업자가 양산되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급여가 동결되거나 삭감되는 등 갖가지 악재가 겹치고 있는 상황에 그들의 지갑인들 온전했겠는가. 아예 텅 비거나 얇아졌음에도 기념일이 이어지면서 돈 쓸 곳은 오히려 많아져 허리가 휘다 못해 끊어질 지경에 놓이기 일쑤다. 그 때문인지 직장인들이 하나, 둘 모이면 어김없이 내뱉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잔인한 5월'이 됐다. 올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 대한민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으니 '2009년 5월'은 그 어느 해보다 잔인한 달이 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 시간은 흘렀고, 계절도 변해

5월은 어린이·어버이·스승·가정·성년·부부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은 물론 동문체육대회, 애·경사까지 줄줄이 이어지면서 지갑은 늘 비어 있다. 다소 무리를 해 채워 놓아도 금세 바닥나기 일쑤다.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여기에다 본격적인 결혼 시즌을 맞아 축의금 때문에 고통이 가중된다.

얼마 전 만난 한 지인은 5월 한달동안 기념일 선물과 외식비, 축·조의금, 회비 등으로 200만원을 넘게 썼다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카드로 현금서비스 받은 적자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개월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나마 직장인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가뜩이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직장을 잃은 '실직자'나 언제 가게 문을 닫아야할지 모를 위기에 처한 '영세 자영업자'들은 고통을 넘어 자포자기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신록이 물들고 초봄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는 계절에 부모형제와 자녀를 소중히 여기고 가정을 잘 챙기자는 의미의 '가정의 달'이 오히려 서민들의 삶을 옥죄는 잔인한 달이 된 것이다. 어찌됐든 말 많고 탈 많은 5월은 지났고, 6월들어서는 때이른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어느 덧 본격적인 여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시나브로 시간은 흘렀고, 계절도 변한 것이다.

- '퇴직한 스승'의 '늙은 제자 사랑'

이런 현실에서 얼마 전 가슴 뭉클한 사연이 전해졌다. 교단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퇴직 교장'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정년퇴임이 멀지 않은 '늙은 제자'에게 자작 시(詩)로 엮은 시집을 선물했다.

지난 1999년 충북상고 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 김효동씨(75)가 하재성 충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62)에게 자신의 시집 <고독의 서곡>을 선물한 것이다. 5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사제의 정'을 나누면서 제자의 정성에 감동한 김 전 교장이 보답할 길을 고민하다가 시를 짓기 시작해 48편의 시를 모아 시집을 출간, 하 원장에게 전달했다.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법은 없다"며 머리를 숙인 하 원장과 "제자의 정년 퇴임과 스승의 날을 축하해 주기 위해 보잘 것 없지만 시집을 준비해 왔다"는 김 전 교장의 특별한 사제의 정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각종 기념일에 골머리를 앓는 기성세대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스승이 제자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한 애틋한 사연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왜곡된 기념일의 틀을 깬 '하나의 사건'이 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난 지 어느 덧 10일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 '특검' 등 날을 세우고 있으니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퇴직 스승'의 '늙은 제자 사랑'이 정치권에 접목되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화해'와 '화합'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희망의 6월을 기대한다./김헌섭 교육문화팀장

▲ 김헌섭교육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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