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장 초승달 아래서

▲ <삽화=류상영>

보또랑은 키가 큰 어른들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가 훌쩍 뛰어 넘을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좁은 도랑이지만 비가 많이 오는 장마 때나 태풍 때는 강물에 사는 메기며 잉어, 쏘가리에 눈치 모래무지 등 강고기 등이 거슬러 올라오기도 한다.

작년 8월의 18호 태풍이 물러 간 뒤에는 해룡이 두 평 남짓한 웅덩이에서 짚단만 한 잉어를 건져 올렸었다. 보또랑은 물이 빠져 나가면 군데군데 웅덩이를 제외하고는 바닥이 보일 정도의 물이 흐른다. 그 탓에 태풍이 물러간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웅덩이 옆을 지나쳤지만 잉어를 발견하지 못했다. 부평초라는 개구리밥 밑에서 숨 쉬고 있는 잉어를 썩은 집단으로 여겨버렸던 까닭이다.

"머셔? 혜룡이가 짚단만한 잉어를 잡았단 말여?"

사람들이 여덟달 반, 혹은 반편이로 여기는 해룡이 그렇게 큰 잉어를 잡았다는 말을 얼른 믿으려 하지 않았다.

"벌똥골 보또랑에서 잡았댜."

사람들은 석 자가 넘는 잉어를 벌똥골 앞 보또랑에서 잡았다는 말에 두 번 놀랐다. 모산에서 국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벌똥골은 상여집이 있는 곳이다. 비봉산의 한 줄기가 톱날처럼 튀어 나온 부분 앞에 무릎 깊이의 웅덩이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작은 웅덩이에 짚단만 한 웅덩이가 놀고 있었다는 걸 얼른 상상 할 수가 없었다.

"내 말 못 믿겄으믄 시방 면장댁으로 가 봐. 면장댁 마님이 며느리한테 과 멕인다고 쌀 두말 값 주고 사갔응께."

"면장댁 마님이 잉어를 사갔다믄 진짠개비구먼. 근데 그 큰 잉어가 딴 사람 눈에는 뵈지않고 해필 해룡이 눈에만 보였을까? 해룡이는 눈깔이 짝짝이라서 좋은 편도 아닌데."

"가가 원래 가끔 가다 반 미친놈처럼 쓸데없이 여길 저길 뛰어 댕기는 놈이잖여. 벌똥골앞을 뛰어가다가 보또랑에 고무신짝을 빠트렸나벼."

"옳지, 고무신짝을 건지러 갔다가 잉어를 봤나보구먼. 쌀 두 말이믄 도대체 을매여, 상품이 아닌 중급으로 천육백 환씩만 잡아도 삼천이백 환. 탁주를 팔아서 삼천이백 환을 팔라믄 대관절 몇 말을 팔아야 하는 거여. 탁주 한 섬 값이 삼천 환잉께. 탁주 한 말이믄 삼백 환, 한 말 팔아서 이문이 얼매여. 많아야 백 환 벌까말까 같던디, 석달열흘을 팔아도 그 돈 벌기 힘들겄구먼."

해룡이가 잉어를 잡았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은 그때서야 소문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 부럽다는 목소리로 혀를 찼다. 그 다음부터 장마가 지거나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올라오믄 만사를 재껴두고 보또랑을 뒤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길 반대쪽은 길과 비슷한 높이는 밭이고 낮은 지역은 논이다. 모산 앞 들이 거의가 이병호의 논이듯이 국도로 가는 길가에 있는 논도 대부분 이병호의 논이다.

"날이 하루가 다르게 풀리는 모냥여. 어저께만 해도 땀이 이렇게 나지는 않았는데……"

국도변에 도착한 김춘섭은 풀숲 위에서 지게를 벗어 세웠다. 이마를 질끈 동여매고 있던 수건을 벋어서 얼굴과 목의 땀을 닦으며 어둠에 쌓여 있는 그릿고개 쪽을 바라본다. 지금부터 고개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평지 보다 갑절 이상 힘이 든 거리지만 고개를 일단 넘기만 하면 내리막이라 수월하게 갈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다.

"면장댁은 언지 보리를 타작한다능겨?"

박태수도 지게를 풀숲에 받쳐 놓았다. 털모자를 벗었더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입안에 가득 고여 있는 침을 모아서 뱉어 버리며 늘 하던대로 돌 위에 앉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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