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배롱나무 가득 심은 밭 하나를 헐어내어 산소구색을 갖추었다. 조선소나무를 너 댓 그루 심고 단풍나무, 영산홍, 산 벗 나무도 심었다.붉은 영산홍과 산 벗꽃이 축제처럼 피었던 산자락에서 수목장을 지내면서 모두들 봉분을 만든 선산 산소보다 좋아 보인다고 했다. 죽음에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셋째아주버님이 첫 번째 소나무 밑에 묻히셨다. 평생을 그 밭에서 엎드려 일하시던 농부였고 집이 가까우니 언제라도 가족들이 그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라 했다.

선산이 행정수도구획으로 편입되는 바람에 보상을 받아 종중에서 산을 하나 구입했다. 그러나 그곳 동네에서 분묘이장을 반대하는 바람에 이장이 어렵게 되었다. 동네 어귀에 몇 십구의 산소가 갑자기 들어서는데 난색을 표하지 않을 주민들도 없겠지만 산을 사 놓고도 묘를 이장하지 못하는 우리 형편도 적잖이 딱했다. 우선은 행정수도 건설이 미진하여 당장에 선친 묘지를 이장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 뿐이다.

신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해도 세월이 가면 노쇠해 지는데 중풍으로 누워계신 아주버님의 노화 속도는 너무 빨랐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처음에는 걷기 연습도 하고 단어 연습도 하여 어느 정도 소통이 되는 듯 했다. 몇 년이 지나자 방안에서만 계셨고 각자의 일로 바빠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버님의 몸은 급격히 쇠락해 졌다. 환갑잔치를 했다. 바지저고리를 곱게 입고 아들에게 업혀서 잔치장소에 오신 아주버님은 치아 없는 잇몸을 드러내고 소년처럼 웃고 계셨었다. 그 함박웃음이 잊혀 지기도 전에 아주버님의 부음을 들었다. 이미 선산에는 들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화장을 해서 수목장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수목장은 정해진 수목의 뿌리 주위에 골분을 묻어주는 방법으로 사람과 나무가 상생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집안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장례절차라 의견이 분분했다. 배롱나무가 가득 심어져있는 밭을 일부 비우고 소나무를 심었다. 의형제처럼 지내는 조경 사업가가 꽤 값나가는 소나무를 기증하듯이 심어주고 환하게 꽃이 핀 작은 나무들로 정원처럼 만들어 주었다. 그 안에 두 분 아주버님 나무도 있고 우리부부 몫의 나무도 있다. 형님이 남편 산소를 만들면서 가족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주신 덕분이다. 그 나무가 나의 가묘라 생각하니 유한한 생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아주버님 환갑잔치 날처럼 그 날도 비가 제법 촉촉이 내렸다. 주검을 화장한 뒤 분골을 항아리에 담아 묻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흔적 없이 자연으로 돌려보내자고 해서 나무 주변에 묻고 잔디로 덮었다. 비석하나 남기지 않고 소나무 밑에 고인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어쩐지 죽음의 모습도 생전의 그를 닮는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49제를 지냈다. 꽃들은 모두 지고 푸르름이 꽉 들어찼다. 소나무 가지에 호미가 걸려있다. 평생을 질박하게 농사짓고 살아온 아주버님이 금방이라도 그 호미를 집어 들고 밭고랑에 들어설 것 같다. 누군가 길 가던 이가 그 소나무에 기대어 담배한대 피워 물고 쉴 것 같이 무심하다. 봉분이 주는 인식과 대조적인 그 느낌이 아주버님의 소박한 삶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내 몸 정성껏 다루고 보존해서 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날, 그 누구의몸의 일부가 되어주고 싶은 오래된 소망을 떠올린다. 그리고 늘 푸른 소나무 한그루 내 것이 된다면 송홧가루처럼 가벼운 영혼으로 자유롭고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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