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장 초승달 아래서

▲ <삽화=류상영>

"그걸 왜 자네가 묻나. 내가 자네한테 물어야 되는 거 아녀?"

이병호가 놉을 얻을 때는 1순위가 박태수 가족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김춘섭이 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내며 반문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담에 한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는 미칠인지 햇갈리는구먼."

"선거가 언진데?"

김춘섭은 신문지 조각에 익숙하게 쌈지 안에 들어있던 풍년초를 말아서 입에 물었다. 박태수가 파랑새에 불을 붙이고 난 성냥불을 건네준다. 김춘섭은 종이 타는 냄새를 느끼며 담배를 싼 신문지에 붙은 불을 흔들어 끈다.

"요새 수시로 구장한테 공짜 술 읃어 마시믄서 정신은 딴데 가 있었는개비구먼.아니믄 새복에 마나님하고 맨살로 맷돌을 돌리고 나왔나 왜 이리 정신이 읎댜. 아! 양력으로 보름날이 선겅께 그날은 딴데가지 말고 틀림읎이 선거를 해야 한다고 구장이 귓구녘에 딱지가 앉도록 노래를 불렀잖여."

"박태수가 이병호네 보리타작하는 날짜 모르는거 하고, 내가 선거 날 깜박한 거하고 개찐또찐이지 머. 해룡네에서 탁배기 한잔 하다가 면사무소 소사로 근무하는 박 씨한티 들었는데 이 달 스무닷세 부텀 한다는 거 가텨."

"난 스무하룬지 알았더니 스무닷세 구먼."

"그건 왜 묻능겨? 보리타작하게 되믄 자네네 네 식구는 가만 앉아 있어도 일을 하게 될 터인데."

신문지로 말은 담배는 권련인 파랑새 보다 두 배 이상빨리 피운다. 김천섭은 침이 묻는 봉초담배 꽁초를 길가 논으로 던져 버리고 일어섰다. 해뜨기 전에 학산에 도착하려면 슬슬 출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게 앞에서 멜빵을 메고 무릎을 끓고 앉으며 물었다.

"면장님 하시는 말씀이 올해 나락 타작만 하고는 일절 농사를 짓지 않는다능겨."

박태수도 담배를 입에 물고 지게를 졌다. 하늘은 아직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둠속에 잠겨 있는 그릿고개를 넘어야 날이 희뿌연 하게 밝아 올 것 같았다.

"가을 뻐꾸기 우는 소리 그만 햐. 그 냥반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 노래를 부르는구먼."

"이븐에는 진짜 가텨. 상규어머가 봉께 구장이 그 비싼 쇠괴기를 두 근이나 끊어 갖고 요리조리 눈치를 살피믄서 그 집으로 들어 가드랴."

"구장이 쇠괴기를 들고 갔는지 똥을 신문지에 싸 들고 갔는지 상규어머가 워티게 안댜?"

"구장 승질에 뭔가 싸들고 면장님댁에 들어가는 봉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드랴. 그래서 점순이한티 살짝 물어 본 모냥여. 구장이 싸 들고 간 거시 머냐고 말여."

"황인술이 쇠고기를 두 근씩이나 끊어 갖고 들어갔다믄 이븐에는 진짜 같은디?"

김춘섭은 박태수가 옆으로 나란히 오길 기다리며 보폭을 줄였다. 뒤에서 따라 오다가 옆으로 와서 걷는 박태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학산에는 정육점이 두 군데 있는데 모두 쇠고기를 팔지 않는다. 명절 때나 두 집에서 소 한 마리를 잡을 뿐이다. 그렇다면 영동읍에 가서 쇠고기를 사왔다는 말이 된다. 황인술이 차비를 들여가며 읍에까지 가서 쇠고기를 사 올 정도라면 이번에는 이병호가 땅을 내 놓을 거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부지도 언뜻 그 말을 했던 거 가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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