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충청의 창] 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문자도 활자도 없던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다. 삶속에서 보다 실용적이고 가치 있는 그 무엇을 갈망해 왔다. 그리고 꿈과 욕망을 담기 위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농경사회에서는 보다 실용적이고 유용한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삶이 풍요로웠던 시대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써의 공예품이 제작되었다. 암울한 시대에는 장식미보다 기능미에 초점을 두었다. 신라의 금관,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공예품을 보면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온기가 서린, 실용과 탐미가 어우러져 싱싱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공예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치열한 공예의 현장이 우리곁에 있다. 바로 진천군 문백면의 공예마을(옥동예술마을)이다. 진천공예마을에는 도자, 목칠, 금속, 섬유,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30여 명의 작가들이 둥지를 틀고 창작의 불꽃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을 입구 조형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생명의 대합창을 테마로 손부남 작가가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김동진 작가가 도자기로 굽고 제작했다.

이 마을의 큰 어른은 벽촌도방의 김장의 도예가다. 그가 만든 백자는 날렵하면서도 단아하다. 맑음이 끼쳐온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감촉이 아슬아슬하다. 순백의 찻잔은 얼음장을 만지듯 얇고 가녀리다. 말갛게 빛난다. 자신을 드러내는데 이처럼 순결할 수 있을까.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멋 부리지 않는 그의 삶처럼 그의 작품도 억지 부리지 않는다. 그저 순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은 자연이다. 자연을 닮아가는 행위가 곧 예술이라는 말처럼 자연 속에서 자연을 소재로 자연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고래실이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연방희 작가는 충북의 천연염색 최고의 어른이다. 그의 제자만 200여 명이 넘는다. 수많은 자연의 빛이 있고 색이 있으며 향기가 끼쳐온다. 바람이라도 불면 마당 빨랫줄에 널려있는 오방색 염색으로 물든 천조각이 나풀거린다.

진도예 공방의 김진규 은소영 부부작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고 운명이다.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진 김 작가의 전공은 인화분청이다. 인화분청이란 점토에 문양을 조각해 가마에 구운 뒤 도장으로 도자기에 음각을 찍어 장식하는 분청의 한 방식이다. 도자기 위에 인화를 찍는 작가의 모습은 평화롭다. 말없이 작업하는 그의 얼굴에 온유한 빛이 퍼진다. 묵언수행이다. 옆지기 은소영 씨의 백자투각은 영롱하고 은은하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손부남 작가는 회화와 공예의 경계,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여울공방의 손종목 작가의 작품에는 생활미학이 넘쳐난다. 이밖에도 이 마을에는 도예가 김동진, 목공예가 김세진, 윤을준, 금속공예가 정차연 등 수많은 예술인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혼을 빚고 있다.

이곳은 중부권 최대 규모의 공예마을, 예술마을이다. 다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직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설렘이 있다. 그곳에 숨어 있는 비밀을 하나씩 캐낼 때마다 감동에 젖고 사랑에 물들며 저마다의 가치에 고개를 끄덕인다. 두리번거리는 삶의 여백을 만들어 보자. 가난한 이들의 삶이란 늘 모자라고 아쉽고 헐겁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공예의 숲에서 예술로 치유하고 삶의 향기 가득하면 좋겠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