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2장 부어라 마셔라

▲ <삽화=류상영>

자식들이 빨리 자리를 잡아야 장가도 보내고 손자도 볼 텐데 그 날이 요원하기만 해서 자주 한숨이 나온다.

"좌우지간 이븐 선거 때 나는 딱 한 가지만 유심히 볼 생각이여. 염색 안 한 군복 입고 댕기는 사람들은 싹 잡아 들이겄다는 벱을 만드는 쪽에 표를 줄겨."

"선거가 은제지?"

장기팔이 곰방대의 재를 톡톡 털어내며 물었다.

"이 달 십오 일이 선거 날이잖여. 가만있자…… 오늘이 닷세 아녀. 담 장날은 열흘, 그 다음 장은 열 닷세니께 딱 열흘 남았구먼.."

"우리가 뽑는 다고 죄다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븐 판에는 누굴 찍을 텨?"

"머니머니 해도 먹은 놈이 물 켠다고 고무신 짝이라도 읃어 신은 쪽에 찍어 줘야 하는 거이 도리겄지."

"누가 그라든데 민주당의 신익희가 대통령이 되야 우리 같은 것들이 심 피고 산다고 하든데……"

"나도 미칠 전에 읍내 전파사 앞에서 신익회가 연설 하는 말을 들었구먼. 내가 들어도 오장육보가 시원해지도록 자유당을 막 까드구먼. 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잖여. 아무려믄 대통령 경험도 읎는 초짜하고 이승만 박사하고 같을까."

이씨는 맨 입에 너무 많은 말을 했더니 아랫배가 등짝에 붙어 버린 것처럼 배가 고팠다. 벌떡 일어나 튀밥전앞으로 갔다. 자루에 들어 있는 옥수수튀밥을 한 줌 집어서 장기팔 옆에 앉았다.

"이승만 박사는 미국서 살다 온 사람이잖여. 그사람이 똑똑하기는 한데 문제가 있다고 하드만. 미국에서 콩이며 밀가루랑 그런 것들을 하도 많이 원조를 해 줘서 농민들이 못 산다고 하든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만 하고 있구먼. 미국 원조가 끊어지믄 우리나라 사람 절반은 굶어 죽는다는 말은 못 들어 봤는개비지?"

이 씨는 날씨가 무덥지도 않는데도 밀짚모자를 벗어서 부채질 하는 시늉을 내며 장터를 바라본다. 어깨에 '갈아봤자 더 못 산다','갈아 봤자 별수 없다'는 띠를 두른 젊은이 들이 두세 명 씩 짝을 지어 다니며 마분지로 말아 만든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고 다닌다.

"비겨! 비켜!"

튀밥기계를 돌리던 염씨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철사로 만든 그물 망태를 튀밥기계어 걸며 소리친다. 튀밥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오륙 세 아이 몇 명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서 손가락으로 양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는다.

"오늘은 염 씨 혼자 신나는 날이구먼."

튀밥기계의 뚜껑이 열리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뽀얀 연기가 염씨의 모습을 감싸 버린다. 사방팔방으로 튀어 오른 튀밥이 눈송이처럼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몇 걸음 물러섰던 아이들이 일제히 튀밥을 주워 먹기 시작하는 걸 본 장기팔은 때 이른 시장기를 느끼며 배를 문질렀다.

튀밥전 을 덮고 있는 차일은 키가 큰 어른보다 높은 담장에 잇대어 쳐있다.

흙 담에 기와를 얹은 담장 안에는 'ㄴ'자 형의 한옥이 있다. 학산에서 보기 드문 한옥으로 지어진 기와집은 여인숙을 겸하고 있는 '상주옥'이라는 술집이다.

상주옥의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원형으로 만든 화단이 있다. 돌을 쌓아서 마당보다 높은 화단에는 봄의 철쭉부터 시작해서 늦가을 국화까지 계절마다 꽃이 피어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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