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곡류·해조류·물 등 약재로 사용

식약동원(食藥同源)은 음식과 한약이 한 가지라는 뜻이다. 밥상에 오르는 음식 중에 한약이 아닌 것이 없다. 쌀 보리 밀 옥수수 콩 팥 기장 메밀 녹두 율무 등 갖가지 곡류, 닭 계란 오리 참새 꿩 등 조류, 소 돼지 곰 노루 사슴 양 염소 개 등 육류, 잉어 붕어 가물치 장어 조기 숭어 가자미 가오리 복어 대구 문어 낙지 미꾸라지 굴 게 조개 새우 등 어패류, 연실 귤 대추 포도 밤 딸기 앵두 매실 모과 감 복숭아 살구 석류 배 능금 자두 호도 다래 잣 사과 은행 등 과실류, 생강 무 순청 배추 죽순 수박 참외 오이 겨자 씀바귀 냉이 더덕 도라지 파 마늘 부추 박하 가지 순채 깨 고사리 고비 유채 시금치 버섯 미역 다시마 등 채소나 해조류, 후추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양념류 등이 모두 한약재이며 심지어 물조차도 '동의보감'에서는 33종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자연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음식물 중에 한약이 아닌 것을 찾는 것은 실로 어렵다. 모든 사람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매일 한약을 섭취한다. 한약 중에서 성질이 부드럽고 맛이 순하여 체질에 상관없이 골고루 오랫동안 먹으면 보약이 되는 것을 밥상에 올려 인체의 근원인 정혈(精血)을 돋운다. 반면, 성질이 강한 것은 질병을 치료한다.

전통밥상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약이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평상 시 음식을 규칙적으로 섭취하고 절도가 있으며, 저녁은 가볍게 아침은 넉넉히 먹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다. 건강은 밥상으로 지키고, 질병은 한약과 침·뜸으로 다스려야 한다.

한약이 해롭다고 하는 이들은 실로 한약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밥상에 오르는 것이 모두 한약인데, 한약을 먹지 않고 어찌 삶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한약에 대한 몰이해는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 등 근거 없는 낭설을 만들어왔다. 한의사가 체질과 병증에 맞게 처방한 한약은 오히려 간병을 고친다. 한약과 침·뜸에 대한 악성 루머들은 대부분 일제 때 민족 문화 말살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음식은 성질이 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편중되어 있으므로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면 서로 성질이 중화되어 기력을 돋우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 편식을 하면 음식독이 쌓여서 결국 병을 얻게 된다. 음식 궁합이라고 하는 것도 한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의 성질을 중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김치가 최고의 음식 중에 하나인 것은 바로 여러 가지 성질의 재료를 섞어 숙성하여 오미(五味)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도록 중화되었기 때문이다.

홍삼을 비롯한 건강기능식품들은 성질이 강하고 편중되어 있어 평소 자주 복용하면 질병을 야기한다. 이 경우 장부와 골수에서부터 병이 진행되므로 병이 드러나는데 시간이 걸리나 일단 발병하면 매우 위중하다. 반면, 한의사의 진료를 받아 체질과 병증에 맞게 지은 보약은 오랫동안 장복할수록 건강에 이롭다. 항생제, 진통제 등 대부분 양약은 한약과 비교하여 약성이나 독성이 매우 강하므로 인체의 정기(精氣)와 장부를 손상하기 쉽다. 전통음식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스며있다. 한의학은 고조선시대부터 민족의 건강을 책임져 왔으며, 음식은 한의학의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음식의 궁합을 맞추어 상복하도록 하거나, 음식으로 질병을 다스리는 것은 한의학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이다. 임금을 모시는 한의사 중에서 음식을 전담하는 식의(食醫)를 가장 중시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氣)를 돋우는 쌀과 혈을 돋우는 콩의 만남도 음식을 통하여 건강을 지켜온 한의학의 결과물이다. 한의학은 우리 문화의 결정체이다.

▲ 박 성 규 예올한의원 원장 한의학 전문위원·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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