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장 초승달 아래서

▲ <삽화=류상영>

"나라고 욕심이 읎을까. 하지만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열마지기나 부치고 있는 판국에 둥구나무꺼리 땅까지 달라는 말이 안 나와서 참고 있는 게지."

"그래도 우리 동리서 면장님이 젤로 믿는 사람이 자네 춘부장이잖여. 딴 사람도 아니고 자네 춘부장이 논을 부쳐 먹고 싶다는 말을 끄내시믄 안 될 것도 읎지. 그릏다고 노동력이 읎는 것도 아니잖여. 노동력이라믄 우리 동리서 젤 택택하잖여. 춘부장도 똥장군 지고 다니시는 걸 보믄 나락가만닌들 못 지고 다니실까. 게다가 자네 마누라는 을매나 억척인가?"

"그 논을 부쳐먹으라고 하믄 못 부쳐 먹을 이유는 읎지. 거리가 먼 곳도 아니고 우리 집 마당이나 한가지나 마찬가징께 장구치고 북치고 놀믄서도 부쳐 먹을 수 있지. 하지만 임자가 줘야 부쳐 먹든지 지져 먹든지 볶아 먹든지 할 거 아녀."

그릿고개는 양쪽의 산과 산 간격이 좁아서 컴컴했다. 그러나 박태수는 어둠 속을 다니는 고양이처럼 능숙하게 산비탈 쪽으로 간다. 길 양쪽의 산비탈에는 무릎 높이로 땅을 편편하게 다듬어 놓은 자리가 있다. 모산이나 양산에 사는 아낙네들은 보따리를 올려놓고 쉬고, 지게를 지고 간 남정네는 지게를 받쳐 놓는 곳이다. 평지 보다 높아서 그곳에 지게를 받치면 다시 지게를 질 때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박태수는 지게를 받치고 돌아섰다. 어둠속으로 걸 건너편에서 김춘섭이 지게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장작 팔고 나서 탁배기 한잔 할텨?"

"안직은 공짜술 마다 할 나이는 아녀. 허지만 오늘 하루만 살고 냘 죽을 사람도 아닌데 식전부터 뭔 술을 산다는겨?"

박태수는 야전잠바의 지퍼를 열었다. 아직은 산마루에 부는 새벽바람이 시원할 때는 아니다. 하지만 무거운 장작을 지고 올라왔더니 몸이 땀에 흠뻑 젖어서 시원했다. 털모자로 부채질하는 흉내를 내며 산비탈에 걸터앉아서 학산가는 쪽의 비탈길을 내려다본다.

"탁주 한 되 값 삼십 환 애낀다고 부자 되는것도 아니잖여."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장작을 뒷산에서 해 오능기 아니잖여. 새벽바람부터 그 먼 범골까지 가서 달그림자 밟으믄서 갈빗대가 휘도록 나무해 와도 꼴난 삼백 환 벢에 못 받잖여. 그릏게 심들게 번 돈으로 삼십 환짜리 탁주 한되 사먹는다는기 먼지 씁쓸하잖여. 괜히 손해 보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단 말여."

"감기고뿔도 아까워서 남 안주는 마누라에 그 남편이구먼. 난 범골에서 나무해 올 때 춤추면서 해 왔는 줄 아남? 긴히 할 말이 있어서 탁주 한 잔 하자고 하능겅께 잔말 말고 장작파는 데로 목구녘 쫌 축이자고."

김춘섭도 허리가 희도록 힘들게 번 돈으로 보리쌀을 사는 것도 아니고 막걸리잔 속에 담그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병호한테 병작을 부탁하려면 박태수가 다리를 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생각하면 막걸리 한 되 값이 대수가 아니었다.

양력으로는 오월 보름이다.

보름이라면 달이 밝아서 둥구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일렁거릴 때마다 흔들리는 나무 가지에 환한 달빛이 어두운 땅바닥에 돗자리를 까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음력으로는 4월 6일이라서 둥구나무 밑에는 초저녁의 대나무 밭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둥구나무 밑에 모여 있는 동네 사람들의 얼굴은 어둡지가 않았다. 하나같이 저녁나절에 들판을 휘여 잡고 있던 노을처럼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둥구나무 밑에는 술을 마실 줄 아는 남정네들이며 아낙들이 모두 나와서 끼리끼리 앉아서 양철 양동이에 부어 놓은 막걸리를 마음껏 퍼 마시고 있었다.

<계속>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