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장 초승달 아래서

▲ <삽화=류상영>

제법 머리가 굵은 열대여섯 살 먹은 사내애들도 눈치껏 양은주전자로 막걸리를 퍼 가서 저녁마다 모이는 골방이 미어 터져라 모여 앉아서 눈이 따갑도록 담배를 피우며 술잔을 돌렸다.

동네 개들도 총 출동해서 코를 벌름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오가다 바닥에 버려진 동태뼈다귀를 횡재 삼아 주워 먹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식으로 흘러갔다.

사람들은 특별나게 우습지도 않은 말에도 배꼽을 잡고 웃어 재끼는가 하면 괜히 장난을 걸기도 하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찢어지게 가난한 나날 중에서도 뼈아픈 경험들을 무용담처럼 털어 놓느라 입에 거품을 물기도 했다.

"이릏게 술 마시다 집에서 쫓기나는 거 아닌지 모르겄어."

"별 걱정을 다하는 구먼. 이른 날 맘 놓고 안 마시믄 언지 또 마신댜."

아낙네들은 둥구나무 그늘이 아니고 꼬막네 집 앞에 멍석을 깔고 둘러 앉아 있다. 그네들은 코앞에 있는 꼬막네 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술이며 술국을 퍼왔다. 처음에는 조신하게 술을 마시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지 치마폭을 달랑 끌어 올려 허리춤에 감아올린 몸짓으로 남정네들이 쳐다보든 말든 막걸리 잔을 비워댔다.

"술은 얼매든지 있응께 걱정마셔유."

분위기가 흥청망청하는 쪽으로 흘러갈수록 집과 둥구나무 밑을 바쁘게 오가도 힘든 줄도 모르고 신이 나는 사람은 해룡네였다.

해룡네는 선거철 들어서 하루 평균 매상이 거의 두 배 이상은 뛰었다. 평소에는 아침나절에 학산 양조장에서 자전거로 막걸리를 배당하는 기출이가 한 말짜리 한 통을 내려놓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선거를 열흘 앞두고 나서는 하루에 두 말이 아니면, 세말까지 팔았다. 그 탓에 오전에는 아침만 먹으면 종종걸음으로 학산에 가서 술국을 끓이는데 들어가는 돼지비계라든지 두부, 콩나물, 다시멸치 등을 사 나르느라 바빴다. 어느 때는 일찍 술이 떨어져서 해거름에 해룡이를 보내 반 말짜리 술통을 새끼로 묶어서 등에 지고 오게 하기도 했다.

둥구나무 밑에서 명당자리라 할 수 있는 너럭바위에는 동네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칠순의순배 영감과 육십 대 중반인 변쌍출이며 박평래 등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다.

"요새 같으믄 살 말 햐. 오늘이 벌써 미칠 째여? 지난 장날 즈녁부터 시작했응께 딱 닷새 째구먼."

"왜 아니랴. 선거가 읎었으믄 요새츠름 심든 날에 보리죽이라도 지대로 먹었겄어? 대통령 선거 땜시 즈녁마다 돼지괴기 국이다, 그 비싼 동태국에 탁주를 취하도록 마실 수 있응께 요새만 같으믄 살만 한 세상이지."

너럭바위 반대편에는 가마니를 펼쳐 놓고 윤길동과 김춘섭이 마주 앉아서 술잔을 주고받았다.

"제기랄 우리 아부지 어머 살았을 때는 왜 선거가 읎었는지 몰라. 내가 알기루는 부모님 평생 생전에 요새츠름 연짱 한 장 도막이나 술타령한 적은 읎었을껴."

"그걸 말이라고 햐. 그 때는 왜정 땡께 팔자좋게 술이 머여. 요새처럼 보리타작이 끝나기 전에는 보리죽은 커녕 나물죽도 지대로 못 드셨을 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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