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이번 학기 수업 중에 음악과 인문학 강좌 마무리 시간에는 ‘열정’이라는 주제로 학생들이 발표를 하였다. 대부분 학생들은 자신이 열정을 쏟은 것이 무엇이 있는지 고심한 뒤 ‘한 것’에 대해 소개해주었는데, 한 학생은 반대로 ‘하지 않은 것’을 발표하였다. 그 학생은 대학에 들어온 뒤로 수업, 과제, 시험 준비로 바쁜 와중에 알바까지 하며 정신없이 쫓겨 생활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 한 학기 휴학을 하였다 한다.
그는 휴학 동안 지나온 시간도 차분히 돌아보고,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지 진지하게 고민도 하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며, 생활의 리듬을 잠시 멈춘 덕분에 다시 복학을 하였을 때 오히려 휴학 전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보다 더 열정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쉼 없는 생활 페이스를 잠시 멈추고 느리게 보낸 시간이 생활에 큰 활력과 열정을 회복시켜주었다며 발표를 듣는 우리에게도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적절한 휴식 시간을 넣어줄 것을 제안해주었다.
음표를 원래 박자보다 두세 배 길게 늘여 연주하듯 바쁜 일상의 빠른 템포를 잠시 멈추고 속도를 늦추며 스스로에게 여유와 휴식을 주는 것을 그는 음악 기호 페르마타(fermata)로 표현하였다. 페르마타는 원래 “쉼, 늘임, 정지”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음악에서 음표나 쉼표에 붙어 “본래 박자보다 두세 배 길게 늘여 연주하라”는 지시를 하는 부호다.
악보에서 페르마타는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무방한 부차적인 장식이 아니라 연주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호다. 늘임표는 음악 연주의 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연주를 위해 호흡을 가다듬게 해준다. 삶에서도 쉼과 정지는 무의미한 나태가 아니라 삶의 한 단계를 매듭짓고 삶의 방향을 재점검하는데 필요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다. 삶의 한 과정을 마무리할 때 생활 속도를 의도적으로 잠시 늦춤으로써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인생악보를 어떻게 연주해갈지 미리 준비하여 아름다운 연주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올 한해 늘 일에 쫓겨 지내다보니 2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몸도 마음도 지치고 모든 힘이 소진된 느낌이 들었는데 페르마타를 소개해준 우리 학생 덕분에 나도 올해 남은 시간 안에 생활 리듬을 잠시 늦추는 늘임표를 넣어주기로 하였다. 급한 일들을 정리해놓고 훌쩍 일상의 자리를 떠나왔다. 갑자기 정신없던 일상을 벗어나 쉬려고 하니 처음 이삼일은 기분이 붕 뜬 것처럼 마음이 안정이 잘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차츰 기분도 가라앉고 편안해졌다. 2019년 며칠 남은 지금 이 순간,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고 앞에 놓인 새로운 한해의 악보를 어떻게 연주할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준비하는 페르마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