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 흐름이 상도에서 벗어나 생기는 질병

기(氣)는 인체를 영위하나 기의 흐름이 상도(常道)를 벗어나면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기병(氣病)의 종류가 많으므로 지면 관계상 몇 차례에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기운이 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사(外邪)에 노출되면 기가 상하여 병이 되는데, 바람에 상하면 여기저기 통증이 생기고, 추위에 상하면 온몸이 떨리며, 더위에 상하면 열로 가슴이 답답하고, 습기에 상하면 붓고 속이 더부룩하며, 조(燥)에 상하면 땀과 대소변이 막힌다.

한가롭게 노는 사람은 몸을 움직여 기력을 쓰는 때가 많지 않고, 배불리 먹고 나서 앉아 있거나 눕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경락이 통하지 않고 혈맥이 막혀 노권상(勞倦傷)이 생긴다. 귀한 사람은 아무 때나 욕심을 채우고 금기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며 진수성찬을 먹은 뒤에 곧바로 드러누워 병이 생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힘을 써야 하되, 너무 피로할 때까지 일을 해서는 안된다. 영위가 잘 흐르고 혈맥이 고르게 퍼지게 일하는 정도가 좋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지도리는 좀을 먹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칠정이 있고 병은 칠기(七氣)에서 생긴다.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생각하고 근심하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기가 뭉치고, 기가 뭉치면 담이 생기고, 담이 성하면 기가 더욱 맺힌다. 칠기가 서로 섞이고 담연이 엉겨 솜이나 얇은 막 같은 것이 생겨 심하면 매실 씨 같은 것이 인후 사이를 막아 뱉어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내려가지 않는 매핵기(梅核氣)가 생긴다. 혹은 속이 그득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상기(上氣)가 되어 숨이 차오른다. 이런 것을 기격(氣膈) 기체(氣滯) 기비(氣秘) 기중(氣中)이라 하며, 이것이 오적(五積) 육취(六聚) 산벽(疝癖) 징가가 되면 명치와 배에 덩어리가 생겨 아프고, 숨이 끊어지려고 하여 매우 위태롭게 된다.

화내면 기가 거슬러 오르는데, 그것이 심해지면 피를 토하고 먹은 것을 그대로 설사하기 때문에 기가 거슬러 오른다. 기뻐하면 기가 조화롭게 되고 뜻이 활달해져 영위가 잘 통하기 때문에 기가 느슨해진다. 슬퍼하면 심계(心系)가 당겨 폐포엽이 들려서 상초가 통하지 않고 영위가 흩어지지 못하여 열기가 안에서 생기기 때문에 기가 사그라진다. 두려워하면 정(精)이 도망가고, 도망가면 상초가 막힌다. 상초가 막히면 기가 아래로 돌아가고, 기가 돌아가면 하초가 불러 오르므로 기가 흐르지 못한다. 추우면 주리가 닫혀서 기가 흘러 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기가 수렴된다. 열이 나면 주리가 열리고 영위가 통하여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기가 빠져나간다. 놀라면 심(心)이 기댈 곳이 없고 신(神)이 돌아갈 곳이 없으며 생각이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가 어지러워진다. 피로하면 숨을 헐떡이고 땀이 나서 안팎으로 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기가 소모된다. 생각을 하면 심(心)이 한 곳에 머무르고 신(神)이 돌아갈 곳이 있어서 정기(正氣)가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기가 맺힌다.

사람이 갑자기 기뻐하면 양(陽)을 상하고, 갑자기 성내면 음(陰)을 상한다. 근심으로 마음이 울적해지면 대부분 기가 궐역(厥逆)하여 가래 끓는 소리가 나고 의식을 잃으며 입을 악문다. 이를 중기(中氣)라고 하는데 예민한 여성이 기막힌 일을 당하면 발병하기 쉽다. 이때 중풍으로 여기고 약을 쓰면 대부분 큰 병을 얻거나 죽게 된다. 중풍과 중기는 모두 분노로 인한 것이다. 사람의 오지(五志) 중에 성내는 것이 가장 심한데, 이는 병이 갑자기 오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은 기혈이 아직 허하지 않고 진수(眞水)가 마르지 않아 화(火)가 수(水)를 두려워하여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몸이 차갑고 담연이 없으며 곧 깨어난다. 노쇠한 사람은 기혈이 모두 허하고 진수가 말라서 화가 두려워하지 않고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몸이 따뜻하고 담연이 있으며 치료할 수 없는 때가 많다.

▲ 박 성 규 예올한의원 원장 한의학 전문위원·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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