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보은댁이 앞장서서 앞마당에 묘목도 아닌 성목成木인 석류나무 두 그루와 대추나무를 심은 것은 애자의 한 돌이 지난 초봄의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대추나무라 색류나무를 심으믄 아들을 난다드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겄지?"

대추나무는 잎사귀가 없어도 나뭇가지가 뾰족뾰족한 부분이 있어서 금방 어떤 나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석류나무는 분간하기가 어렵다. 옥천댁이 석류나무 앞에서 호기심어린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고 보은댁이 귀담아 들으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류꽃도 보기가 참 좋아유……"

옥천댁은 손자를 염원하는 뜻에서 마당에 대추나무와 석류나무를 심었다는 점이 보이지 않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옥천댁은 마음속에서 딸 손녀는 손주가 아닌감유? 라고 반문하고 싶은 목소리가 솟아올라 왔으나 엉뚱한 말을 하고 말았다.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구먼. 색류나뭉께 색류가 열려야 색류나무니 색류가 열리지 않으믄 아무 나무도 아녀. 암만 종자가 좋아도 색류가 열리지 않으믄 색류나무가 아니라 이거여. 색류가 열릴라믄 워틱해야 햐. 벌이 있어야 하는 건 하늘의 이치여. 꽃이 아무리 이쁘믄 뭐햐. 꽃에 화분이 읎으면 벌이 날아올 리가 읎지. 그랑께 벌만 탓하지 말고 꽃도 열심히 화분을 만들어야 하능겨. 무슨 말인지 알겄지?"

마당을 점령하고 있는 햇볕은 좋았다. 하지만 비봉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겨울의 냉기를 품고 있었다. 옥천댁은 보은댁의 말에도 냉기가 묻어 있는 것을 느끼며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머니 말씀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보냐. 딸자식은 자식이 아닌가? 원래 옛날에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도 있잖여. 우리가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잖여. 내 나이 인제 지우 스물 다섯이잖여. 남들은 사십 대에도 늦둥이를 난다고도 하는디 당신은 서른 살이 될라믄 앞으로도 반 십년은 남았어. 그랑께 아들은 천천히 낳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걱정하지 마."

옥천댁은 마당에 석류나무와 대추나무를 심은 날 저녁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렸다. 꼬박 밤을 하얗게 새우도록 고열에 시달리다 보니 아침을 지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영동 군청에서 임시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이동하가 내려왔다. 영동에서 하숙을 하는 이동하는 약방에서 지어 온 약봉지의 가루약을 직접 물에 타주면서 부드럽게 위로를 했다. 옥천댁은 그때서야 원인을 알 수 이 이틀 동안이나 입술이 타는 것처럼 들끓던 고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은 둘째인 말자를 임신하고 나서였다.

보은댁은 옥천댁이 둘째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한 그 다음날 외출 채비를 차렸다.

"원래. 아들은 하늘에서 점지를 해 주는 벱여. 난도 동하를 그냥 읃은 기 아녀. 그랑께 암만 말고 절에 가서 치성을 드려보자. 그기 우선 순서인 거 같응께."

옥천댁은 외출 준비를 하고 서두르는 보은댁의 말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보은댁은 이원댁과 함께 절에 받칠 공양미로 쌀을 다섯 가마니나 달구지에 실케 해서 문 밖을 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둥구나무가 노랗게 변한 나뭇잎을 무시로 털어내는 초겨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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