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충청의 창] 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눈 오는 밤, 몽당연필을 깎았다. 숲의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어느 광부의 땀방울이 연필심에 맺혔다. 억겁의 세월을 달려왔을 나무의 숨결이 느껴진다. 올 한 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사박사박 연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하얀 종이가 검은 글씨로 촘촘할 때 나는 숲의 중앙에 들어와 있었다.

어둠이 가고 새벽이 오고 있다. 연필로 쓰는 글씨는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지만 내 삶의 발자국은 되돌릴 수 없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최전선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내게도 어둠속에서 금맥을 캐는 광부의 심정이, 검푸른 숲의 비밀과 나무의 향기가 가득할까. 새 해 새 출발의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새벽이 좋다. 빛과 어둠을 어찌 구분할 수 있을까만 어둠 사이로 희끗희끗 쏟아지는 여명이 나는 좋다. 새날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사랑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하며 위대한 혁명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으니 앙가슴 뛴다. 아침형 인간이 즐기는 특권이 아니던가.

나는 숲을 사랑한다. 봄의 숲은 풋풋한 대지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파릇파릇 움트는 새 생명이 좋다. 여름의 숲은 빛과 그림자의 짝짓기다. 피톤치드가 가장 왕성할 때다. 가을의 숲을 걸으면 시인이 된다. 오방색 단풍에 내 마음이 물들고 흩날리는 낙엽에 눈물이 난다. 겨울 숲을 오르면 눈부신 고립에 경배를 한다. 침묵의 나무에 움이 트고 있으니 가슴이 시려온다.

나는 눈 오는 날, 눈길을 걸으면 마음이 유순해진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걷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순백의 풍경에 내 발자국이 흠이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내 뒤를 따라올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발자국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두렵다. 헛된 길이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눈 오는 날, 눈길을 걷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노을이 좋다. 석양은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노을을 보면 오늘 하루 이만하면 됐다며 삿된 마음 부려놓게 된다. 내 삶의 뒤안길을 바라보며 여백의 미를 찾을 수 있다. 떠나야 할 때 떠나고, 버려야 할 때 미련없이 버릴 줄 알며, 누군가의 가슴에 빛나는 풍경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노을이 좋다.

나는 꽃을 사랑한다. 꽃은 식물의 성기라고 했던가. 꽃은 발아의 시작이다. 스스로 그러하되 저마다의 결과 향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을 눈부시도록 빛나게 하는 은유가 있다. 꽃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내가 당신을 꽃처럼 보듯 당신 또한 나를 꽃으로 보면 좋겠다.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이 관계성(net-works)이다. 수많은 자연과 생명체가 소통하고 순환하며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관계성이 만들어진다. 생태계가 평화롭게 존립할 수 있는 핵심가치이다.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인간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첫 경험, 첫 만남, 첫 걸음에는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과 미안함이 함께했다. 그 때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되돌아봤다. 늘 아쉽고 헐렁하다. 언제나 현명해질 수 있을지, 그래서 더욱 긴장된다. 새해 첫 날 밤, 연필을 깎으며 무디어진 내 삶의 촉수도 함께 깎는다. 똘레랑스(관용)와 노마디즘(인식의 확장)의 새 날을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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