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충청시론] 김복희 전 오근장 동장

모처럼 찾아온 아침의 여유로움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다가온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한 생각이 드는 반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일단 푹 쉬고 보자고 TV 앞에 앉아도 보고 집 주변 우암산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이러면 안 되지 싶어 문화교실에서 챠밍댄스 운동을 시작했다. 땀을 흘리며 하는 운동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내친김에 숲 해설가 자격 취득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5개월 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웠던 숲 해설가 자격취득을 한 후, 우암산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매주 식생공부도 했다. 숲 공부를 하는 중, 숲과 관련이 있는 신규 농업인 영농교육도 공부해 보다 많은 것을 접할 수 있었다. 여행도 시간 구애 없이 자유롭게 다녔다. 배움에 대한 강렬한 유혹으로 한해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지난 일 년은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오롯이 실천하며 살았던 한 해였다. 퇴직하기 전에는 늘 보고 싶던 손자를 생각만 나면 자주 보러 가고 싶었고, 늦었지만 살림살이도 걸음마를 떼듯 배워가고 싶었다. 문화생활을 위해서 조조영화도 보고, 가까운 서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묻혀 있고도 싶고, 독서 토론 동아리 등 활동도 원없이 하고 싶었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뒤 돌아 보니 조조영화는 한번뿐이 못 갔고, 손자 만나러 가는 것과 서점과 도서관은 전혀 실행을 못했다. 금빛도서관을 새롭게 개관했다고 신문기사를 보았지만 벼르기만 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살림살이도 또한 잘 해 보겠다고 결심만 했지 냉장고와, 옷장정리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퇴직하면 집에서 낮잠도 원 없이 자고, 화장 안한 가벼운 얼굴로 편하게 쉬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낮잠은 거의 자본 적이 없고 화장 안한 얼굴로 있어 본적도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친정동생들도 얼굴보기가 더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늙으신 엄마 모시고 온천도 가고 여행을 다닌다고 큰소리는 쳐놨는데 그것도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움을 찾아 돌아다녔고 많은 모임으로 정신없이 지낸 한해였다. 하루에 세 곳을 다닌 적도 여러 날이다.

그런데 바쁘게만 살아온 것 같은 지난 한해가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사십년 동안 살아왔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오히려 우울함과 무기력함으로 퍽 힘들었을 게다. 인생 후반전으로 가는 과도기를 잘 넘긴 필자에게 나 스스로 토닥여준다.

이젠 조직의 틀에서 벗어난 평범한 사람으로 당당히 어깨를 펴고 걸어가는 거다. 그 동안 더없이 행복하게 기쁨을 주었던 책들도 다시 펼쳐 읽고, 가까운 서점에 가서 눈이 아프도록 책장에 묻혀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다리가 떨리기 전에, 가슴 설레는 여행으로 내 남은 일기장을 한 장, 한 장씩 채워가고 싶다. 40년 만에 찾아온 나를 위한 특별한 외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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