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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눈물겨운 추억장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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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4  14: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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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장기원 

초등학교 2학년 때 8·15 해방을 맞이하여 친구들과 함께 '문풍지'에 태극기를 그려서 100여호가 되는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마을을 돌면서 "만세 만세 만세...."를 부르던 옛 일이 생생하다. 초·중·고 재학중에 일요일이면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오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금수산 끝자락인 투구봉 아래 말목산에서 땔나무를 열심이 채취하여 지게에 짊어지고 오다가 돌벼랑에 넘어져 구르는 바람에 지게가 부서져서 그 땔나무를 네 번이나 어께에 메고 집에까지 운반하기도 하였다. 또 소풀을 베어와서 소죽을 쑤어 소에게 먹여주면 맛있게 먹으면서 쳐다보는 소의 모습에 즐거움과 보람이 많았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 오후에 장작을 지게에 짊어지고 가서 팔 때에는 장작을 사는 집에까지 짊어지고 가서 부엌에 차분하게 정리하여 놓으면 "아이고, 착하고 고맙네" 하시는 집주인 아주머니는 장작값과 함께 따스한 숭늉까지 주시기에 너무도 감사하였다. 봄에서 초가을까지 어머니 따라 산에 가서 산나물을 뜯어다가 나물죽을 쑤어서 맛있게 먹기도 하고 꽁보리밥, 조밥, 조당수, 마물죽이 일상적인 식사였었다.


조부모님, 부모님이 한 여름에 밭에서 김매기를 하실 때 마을 뒷동산 아래 산자락에서 나오는 생수인 샘물을 구리로 된 주전자에 받아 담아서 300m 되는 밭까지 숨이 차도록 뛰고 걸어가 드리면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 뿌리시면서 "기원이가 담아온 샘물이 참으로 시원해"하시면서 웃으시는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국어 교과서의 중요한 단어 옆에 (  )속에 한문글자가 있어서 한자(漢字)공부를 하려고 문풍지를 잘라 밥풀을 바른 한글 단어를 붙여놓고 공부를 하였다. 낮에는 농사 뒷일을 돕기에 공부를 못하고 밤에 호롱불을 머리맡에 켜놓고 공부를 하다가 보면 졸려서 앞머리카락을 태운일도 많았다.


3km가 넘는 초등학교를 걸어 다닐 때는 교과서, 학용품, 도시락을 함께 보자기에 싸서 짊어지고 등교를 할 때는 세 번, 하교를 할 때는 두 번씩 쉬어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가을 추수를 할 때, 2km가 되는 논에서 벼 14단씩 지게에 짊어지고 3번씩 쉬면서 집에 까지 운반하였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우등상장과 함께 졸업생 대표로 졸업장을 받고 뒤돌아서서 인사를 하는데 흰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나도 울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눈물겨운 추억들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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