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모시·삼베 등 피륙을 짜는 연장

▲ 모시매기.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시대에 천연섬유를 수확하고 방추차를 이용하여 직조하게 됨으로써 선사시대의 원시적 직조방법에서 벗어나 섬유의 인위적 생산이 시작되었다. 여러 종류의 직물이 일찍부터 짜여졌으며 크게 성행하지 않던 목화가 고려말경 문익점의 노력으로 널리 보급되면서 면직물은 삼베, 모시, 명주와 함께 귀중한 직물원료가 되었고 여자들의 길쌈은 농가의 식량생산 다음으로 중요한 직조 생산이었다.

베틀은 무명·비단·모시·삼베 따위의 피륙을 짜는 연장으로 오늘날의 직조기와 원리가 비슷하다. 베틀은 예전에는 '뵈틀'('신증류합'·'역어류해')이라 했고, 한문으로는 機('신증류합'·'역어류해'·'방언류석')·幾('재물보')로 적었다.

베틀짜기 전에 먼저 실을 완성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원료에 따라 실 만드는 방법과 도구가 각기 다르다. 삼이나 모시는 거의 손으로 작업하므로 특별한 연장이 없으나 무명은 솜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과정과 도구가 다양하다. 목화씨를 뽑는 씨아, 솜을 타는 활, 실을 뽑는 물레를 통하여 실을 완성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여러 가지 실을 베틀에 걸어 짜내면 된다.

베틀은 여러 가지 도구와 부속품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몸체, 힘전달장치, 베짜는 장치로 대별되며 현대의 직기와 그 기본원리는 같다. 베틀의 작동원리에는 과학슬기가 담겨져 있는데, 베틀을 이용해 천을 만드는 기본 원리는 가로 세로로 날실과 씨실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것이다. 먼저 오른쪽 다리를 앞뒤로 걸어 밀고 당겨 그 힘이 베틀신→ 신끈→ 신대→ 용두머리→ 눈썹대→ 눈썹노리→ 눈썹끈→ 잉앗대→속대를 지나 잉앗실까지 전달되어 잉앗실에 걸려있는 날실을 위아래로 오르내리게 하고, 실꾸리를 넣은 북을 좌우로 오가게 하여 씨실을 넣어 빗살같이 생긴 바디로 내리쳐 튼튼하게 한다. 다시 발로 신끈을 당겨 용두머리를 움직이면 눈썹줄에 매어 있는 잉아가 들리면서 윗날과 아랫날이 바뀌고, 또 그사이에 북으로 씨실을 넣고 바디로 조이기를 반복하면서 피륙을 짰다

피륙은 날이 얼마나 촘촘하냐에 따라 품질이 달랐다. 촘촘한 정도를 '새'로 나타내는데 한 새는 40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날실을 말한다. 한 구멍에는 두 가닥의 실이 나온다. 상품의 삼베는 6새이므로 240개의 구멍에서 480가닥의 날실로 짜고, 비단은 보름새(15새)이므로 600구멍에 1200가닥의 실로 짠다. 모시와 무명은 8새가 상품이었다. 하루에 혼자서 삼베는 1필(18m)을 짤 수 있고, 비단은 1/3필을 짰다.

베틀은 발로 조종함에 따라 잉아가 위아래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저구(·口 : 북을 넣을 수 있는 통로)가 완성되면 북이 날실의 위아래를 오가면서 날실 위에 씨실이 쌓이게 됨으로써 옷감이 짜여진다. 옷감이 짜여지는 속도는 실의 종류와 숙달도에 따라 다르며 옷감 한필 (0.9×36m)을 짜는데 약 20∼30시간 소요된다.

베틀 역시 전통사회의 대표적인 첨단과학기술의 표본이며, 오늘의 방적, 방직기술 역시 베틀의 원리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피륙 - 아직 끊지 아니한 베, 무명, 비단 따위의 천을 통틀어 이르는 말.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