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31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는 교육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발주한 `한국고전번역원 및 부설 고전번역대학원의설치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서 한국 서지학 전공인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신승운(辛承云. 56) 교수는 `국학진흥을 위한 기획조사 연구팀`을 맡아 준비한 고전번역대학원 설립안을 공개했다.
설립안 골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고전국역 전문기관 역할을 해 온 민족문화추진회(이하 민추)의 기능외에 그 전문인력 양성을 담당할 대학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흐른 지난 3일,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32명이 발의한 `한국고전번역원법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민추는 42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한국고전번역원`(이하 번역원)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번역원 출범에 산파역을 담당한 신 교수는 이에 즈음한 인터뷰 요청에 처음에는머뭇거렸다. "민추 사람도 아니요, 교육부 사람도 아닌 제3자가 번역원을 두고 왈가왈부한다는 게 자칫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는 번역원의 제3자가 아니었다. 그는 민추 산하에 국역연수원이 개원한 1975년 이후 1995년 9월1일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20년 동안 민추에서 일했다. 이곳에서 그는 연수부장과 상임연구원, 국역부장, 편찬부장, 연수원교수를 거쳤다.
나아가 신승운 개인으로서도 번역원 설립은 숙원이기도 했다. 8일 기자와 만난 그 자신의 회고에 의하면 "90년대에 10년 가량 줄기차게 고전번역 이대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각종 기고활동을 `문예연감`이란 잡지를 통해 펼쳤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국역부장으로 재직하던 1986년 무렵에 일이 터졌다.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민추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고전 국역사업은 `주먹구구식`이라고 비판한 외부 기고문을 모 일간지가 대대적으로 취급함으로써 교육부 고위 관료에게 불려가 혼쭐이 난 것이다.
"교육부에 불려들어갈 때 자료를 준비해 갔습니다. 연도별 고전국역 현황 그래프를 내밀고는 `보세요, 국역추진 실적이 이처럼 해마다 들쭉날쭉합니다. 저는 이런들쭉날쭉을 주먹구구라고 표현했습니다`고 해명했지요. 나름대로는 자신이 있었지만,박살이 났지요."
다행히 이 사건은 민추로서는 전화위복이 됐다. 민추 탄생의 주역 중 한 명으로당시 사학계 거물이었던 두계 이병도 박사의 주선으로 노신영 국무총리가 민추가 추진하는 `한국문집총간` 사업을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민추, 나아가 한국학계가 축적한 가장 뛰어난 금자탑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한 한국문집총간 사업은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일반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민추는 무엇이 문제였기에 번역원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사업들이 모두 주먹구구라구요. 민추란 기관은 참으로 묘해요. 재단법인이지만 재원이 없어요. 국가기관 혹은 준국가기관인가하면 전혀 그렇지 못해요. 그러면서도 정부(교육부)에서 보조금을 받아다가 사업을 합니다. 그러니 어느날 정부가 보조금 지급 안 하면 그 순간에 문을 닫아야 합니다.
"
하지만 앞으로 3개월 이내에 출범할 번역원은 이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번역원은 `한국고전번역원법`에 기초한 준국가 기관입니다. 이에 근거해 보조금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정부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고전국역과 같은 각종 사업을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그리고 더욱 학술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법안 통과가 갖는 가장 중대한 의의입니다."
번역원 출범에 즈음한 아쉬움은 없을까?
신 교수는 "고전번역은 인력양성과 병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번역원과 함께 추진한 `고전번역대학원` 설립이 무산된 점이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왜 무산되었느냐? 이해 관계가 걸린 다른 기관에서 기를 쓰고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작년 공청회만 해도, a기관은 아예 민추를 거져 먹겠다는 심사로 나왔고, b대학 대표자는 `고전번역 전문인력 양성을 우리가 잘 하고 있는데 왜 너희까지 끼어드려 하느냐`고 반대하더군요."
이 때문에 올해 안에 모습을 드러낼 번역원의 미래에 대한 그의 우려 또한 크다.
"지금 우리 학계에서는 고전번역이 이상하게도 기능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데, 번역은 학문의 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에 앞서, 혹은 그와 병행해서 관련 문헌을 수집하고, 목록을 작성하고, 표점을 찍어야 하며, 원문을 교감하고, 해제를 작성해야 하며, 색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이 어찌 단순한 기능으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 기자명 조무주
- 입력 2007.07.0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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