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는 전 세계 125개 국어로 번역되어 왔고 영화로도 계속해서 각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친숙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작가가 알고 지내던 리들 자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로 주인공 이름 앨리스도 리들 자매 중 특히 작가가 애정을 가졌던 앨리스 리들의 이름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어린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창작한데다 내용도 어린 앨리스가 경험하는 신기한 모험으로 채워지다 보니 주로 아동용 동화로도 여겨지기도 하는데, 언어차원에서 보면 캐롤이 창안한 다차원적인 고도의 난센스를 모아놓은 집합소 같다. 실제로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작품에서 학문적 영감을 길어 올리고 있다.

‘앨리스’에는 다양한 언어유희와 난센스들이 넘쳐나는데, 그중에서 특히 매혹적으로 여겨지는 두 가지만 꼽자면, 하나는 작가가 기존 언어 규범에서 유추하여 실재하지 않는 단어를 창안하여 만들어내는 언어유희다. 앨리스가 점점 더 기기묘묘한 상황에 처하자 하는 말 “Curiouser and Curiouser!”가 한 예다. ‘curiouser’는 ‘curious’의 비교급 ‘more curious’를 부적합하게 표현한 단어의 오용이다. 영어에서 형용사의 기본형에 er를 결합하여 비교급을 만드는 규칙을 그에 해당하지 않는 ‘curious’에 유추적으로 적용하여 만든 것이다. 이것은 부정확한 표현이지만 낯선 모험들에 마주하는 당혹감과 충격을 어린 화자의 언어로 묘사한 문체적 일탈이라고 하겠다.

다른 하나는 유사한 발음의 단어들 사이의 언어유희이다. 가짜 거북이 바다 속 학교에서 배웠다는 과목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대목에서 이런 언어유희가 절정에 달한다. 가짜 거북이 학교에서 제일 먼저 배운 과목은 ‘Reeling and Writhing’이다. ‘감기와 몸부림치기’가 바다 속 학문의 기초인가? 실제로는 이 단어들은 학교교육에서 학문의 기초가 되는 ‘Reading and Writing(읽기와 쓰기)’과 비슷한 발음에서 유추한 말장난이다. 이 말장난에는 어쩌면 학교교육을 희화하고 비판하는 의도도 있었을 수 있다.

‘앨리스’와 같이 다양한 각도에서 언어의 난센스 영역을 발굴해내는 작품을 읽을 때 만일 단어의 의미에 중점을 두고 읽는다면 그 안에 담긴 의미로 전달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는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살만 루시디는 “한 사회를 여는 열쇠는 그들의 번역할 수 없는 말을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번역하기 어려운 언어는 한 사회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에서 어떠한 번역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무엇, 거기에 그만의 고유한 작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