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그것도 성이 차지 않은 보은댁은 일부러 사람을 사서 다른 마을 입구에 있는 공덕비에서 한문으로 남男자를 파오게 해서 그 가루를 옥천댁에게 먹였다.

온 집안이 아들 낳기를 기원했지만 옥천댁은 세 번째도 딸을 낳고 말았다.

옥천댁이 출산을 하던 날 밤 보은댁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 다는 얼굴로 휑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하지만 옥천댁은 사내자식처럼 우렁차게 우는 아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기가 원해서 태어 난 것도 아니고 어른들의 원해서 태어난 아이를 원망했다가는 훗날 잘못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첫째나 둘째 아이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아이에게 초유를 먹었다.

"니 잘못이 아니다. 안즉 정성이 부족한 모냥이다. 그랑께 나하고 미칠 어디 좀 댕겨오자."

보은댁은 더 이상 앉아서 아들 낳기만 기다린다는 것은 무모하다고 단정을 지었다. 시간만 있으면 옥천댁을 데리고 용하다는 성황당이며, 아들바위를 찾아다니며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렸다.

보은댁이 옥천댁에게서는 희망이 없다고 믿어 버린 것은 셋째 딸 영자의 백일이 지난 다음 날이다.

이병호는 기다리지 않았던 셋째 손녀의 백일이기는 했지만 백일 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백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명이 길다고 하는 백설기와, 각종 액을 물리치고 평생을 수수하게 살 수 있다는 수수떡도 넉넉하게 만들어서 동네 각호 마다 빠짐없이 돌리라고 했다. 백일 떡을 얻어먹은 사람이 다문 십 환이나, 몇 십 환이라도 답례를 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겸사겸사 이런 기회에 면내 기관장들에게 한턱내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면장을 비롯해서 지서장, 농협조합장, 교장, 우체국장, 연초조합장, 소방대장 등 유지들도 불러서 상다리가 휘도록 대접을 했다.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순배영감을 비롯해서 변쌍출이며, 박평래 와 구장 황인술 등 몇몇을 불러서 대접을 했다. 그러다 보니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느라 부엌은 비어 있을 틈이 없었다.

이튿날은 백일상 차리는데 도움을 준 몇몇 아낙네들을 불러서 대접을 하고도 남은 음식 싸주었다. 그래도 정짓간에는 소쿠리며 광주리와 채반 등에는 각종 부침, 떡 종류, 다과 종류들이 겨울의 찬바람에 양철조각처럼 얼어 있었다.

마당에는 방앗간에서 벼를 빻을 때 나오는 싸라기 같은 싸락눈이 대각선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몸부림을 치면 채 녹지 않은 싸락눈이 먼지처럼 몰아쳐서 담벼락 앞에 소복하게 쌓이고 있었다.

안방으로 찾아 들 온 보은댁은 더 이상 때를 늦출 수 없다는 비장한 표정을 한 얼굴로 옥천댁을 앞에 앉혔다.

"니가 우리 집에 시집을 와서 우리 집안 행핀이 몰라보게 핀 거는 사실이여. 시방은 니가 알다 싶이 사방 오십리 안에서는 우리집안 만큼 택택한 집안은 읎다. 재산만 택택한 것이 아니여. 니 시할아부지도 건강하시고 시아부지도 세상을 잘 만나서 옛날로 치자믄 원님이나 마찬가지인 면장님으로 근무를 하시고, 동하도 비록 임시직일 망정 군청에서 근무를 하고 있응께 더 바를 것은 읎지. 허지만 대를 이을 자손이 읎응께, 아무리 재산이 택택하고 큰 벼슬을 해도 먼 소용이 있겄냐. 우리 집안이 내시 집안도 아닝께 빛 좋은 개살구하고 머가 다르겄냐. 내가 생각해도 속이 썪은 추자처름 겉만 번지르한집안츠름 보일 정도니 다른 이들은 워티게 생각하겄냐. 무엇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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