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은 다양하고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소통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여기에 합리적 의심이 더해지면 더 완벽하다.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획일적이고 의존적이며 억압적인 환경에선 집단지성 대신 변종의 독선과 선동만 난무하게 된다.

일례로 신종 전염병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한 대응을 보자. 온라인 상에서 신종 전염병 발생 초기부터 전염병 확진자 이동 경로, 방문 지역, 감염 인원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도가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코로나 알리미, 코로나 앱으로 불리는 정보 제공 사이트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제보와 공식적인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사이트에 접속해 멀티 소통이 이뤄지면서 더 많은 정보들이 자발적으로 생성된다. 그야말로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SNS를 통한 많은 격려와 소통 역시 전염병에 대한 훌륭한 대처가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을 거쳐 거침없이 퍼지는 소통이 전염병 공포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이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전염병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재난과 재해는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인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반면 억압된 언론 통제와 일방적인 정보 제공, 이와 함께 합리적 의심 없는 의존적인 정보 수용이 어우러지면 독선과 선동이 난무한다. 일부 외신에서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인종차별적 헤드라인, 제목 뽑기가 그것이다. 억압된 언론 통제는 결국 전염병의 무차별적 확산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일방적인 정보 제공과 해결 방안은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 일방적인 정보 수용자 입장도 바람직하지 않다. 편견에 의존한 정보 수용은 결국 인종차별, 부정확한 감염 대응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수준까지 가면 전염병 감염보다 무서운 독선이, 선동이 이뤄진다. 정보 수용자들은 합리적 의심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멀티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정보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집단지성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다. 프랑스 미디어 철학자인 피에르 레비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류사회는 공동의 지적 능력과 자산을 서로 소통하면서 집단적 지성을 쌓아 왔으며 이 집단지성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인류의 진정한 통합으로 새로운 진화의 완성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세계철학 World Philosophy; 2000년)
 

앞으로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집단지성이 필요한 사회가 될 것이다. 다수 집단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하나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해 가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4월 총선 역시 집단지성을 통해 합리적 해법을 찾아가는 현명한 선택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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