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그라고 비록 밭이 틀리다는 흠이 있기는 하지만 낳은 정 보다는 지른 정이 짚다고 하드라. 핏덩이를 니가 재우고 미음을 믹여서 키우믄 널 에미로 알거 아니냐. 너도 니가 고생해서 키운 만큼 아들한테 정이 들 거고. 그릏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녀. 씨받이가 아를 벤 기미만 보이믄 부르믄 동하는 그 집에 얼씬도 안 할거여. 그랑께 동하가 한 달포 동안만 출장 간 셈치고 있으믄 된다. 그라믄 저절로 삼대독자가 니 품안으로 기어들어 올팅께."

"애자 아부지하고도 상의를 한 거유?"

"동하는 니가 허락을 하믄 그릏게 하겄다고 하드라."

보은댁은 어제 모처럼 집에 와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오후에 출근한 이동하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옥천댁이 허락을 하면 이동하를 설득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같다는 생각에 거짓말을 했다.

"그람 지가 허락을 하지 않으믄 씨받이를 읃지 않겄다는 말씀이신가유?"

"여브가 있겄냐?"

"그람 지는 애자 아부지가 한 달 동안 장기 출장을 가신 걸로 알고 있으믄 되겄네유."

옥천댁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네 번째는 사내아이를 낳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다 이동하가 마음대로 결정을 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존중한다는 말이 고마워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씨받이를 얻고 아들을 얻기까지의 일은 실패에 감겨 있는 실을 풀듯이 술술 풀려 나갔다.

보은댁은 옥천댁에게 말을 하기 전에 씨받이를 할 여자를 구해 놨다. 친정인 보은에 살고 있는 들례라는 여자였다.

근본도 모르는 들례는 출생이 묘한 만큼이나 묘한 이미지를 풍기는 여자였다. 커다랗고 맑은 눈은 바보천치처럼 맥아리가 없어 보이다가도 일순간 무당처럼 날카롭게 빛나기도 했다. 갸름한 턱에 선이 가는 입술하며 반듯한 콧날은 한국적인 이미지 보다 일본 여성을 많이 닮았다. 좁은 어깨선에 비해서 젖가슴은 놀랍도록 풍만했고, 개미처럼 가는 허리에 비해 둔부는 호박처럼 둥글었다. 그래서 치마끈으로 젖가슴을 단단히 동여매는 한복을 입은 그녀의 겉모습만 보면 그녀가 얼마나 요염한지 알지를 못한다.

들례는 치마 안으로 터져 버릴 육체를 숨기고 있는 여자답게 일찍 남자를 알았다. 첫 남자는 그녀가 식모로 일을 하던 일본인 다나까였다. 보은에서 소문난 지주였던 다나까는 열아홉인 들례에게 반해서 보은시내에 살림집을 내주고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들례는 곧 임신을 했고 해방이 되던 해에 아들을 낳았다.

"언젠가 다시 우리 세상이 올거다. 세상이 좋아지믄 틀림없이 내 아들을 찾으로 올테니까보은을 떠나지 마라. 이건 명령이다."

다나까는 일본으로 쫓겨 가는 마당에 들례를 일본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먹고 살만한 땅을 들례에게 남겨주고 훗날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돌아갔다.

꽃이 아름다우면 손을 타는 법이다. 두 번 다시는 일본인 세상이 오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던 들례는 한 해를 넘기지 않고 손용팔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다나까에게서 얻은 아들도 손용팔의 호적에 올리고 그럭저럭 행복한 날을 보내는가 싶더니 일이 년에 불과했다. 천성적으로 노름을 좋아하는 손용팔은 들례가 사는 집까지 날려 버린 후에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들례는 다나까의 아들과 살면서 후처 자리를 물색하고 있다가 보은댁과 연이 닿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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