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북대학교 교수

 

[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학교 교수

삼월이다! 우울한 소식만 귓가에 맴도는 시기에 삼월의 햇살이 슬프게 눈부시다. 시린 햇살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창에 쳐진 블라인드에서 공포의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 숨소리 없는 말들로 내팽겨 쳐진다. 재앙이다! 요사이 인간은 그저 격리와 기피 대상인 좀비로 추락한 존재이다. 밀집된 형태의 모임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체포되지 않으려면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거리를 두라 한다.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를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말이 없다! 모두가 코와 입을 작은 마개로 덮고, 눈은 고글로 가리고, 적정거리를 두고 서로 얼굴을 돌리고 있다. 거리에는 그저 쉴 사이 없이 서로를 원망하고 질책하는 방송매체바이러스의 목소리만 시끄럽다.

바이러스는 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생물체 사이의 전쟁은 승자에게 많은 노획물을 제공한다. 이긴 자는 전쟁으로부터 생존의 보장이나 영역의 확보 또는 재물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바이러스의 공격은 생존과 영역의 확대가 목적이 아닐까?. 인간들이 갖고 있는 생존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바이러스 또한 생존을 위하여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신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바이러스는 결코 죄(?)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몸부림을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그 자연의 시스템을 먼저 공격하는 것은 인간이 아닐까? 바이러스는 그들의 영역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생태가 있었다. 인간들이 그들의 삶에 환경의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어찌할까?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환경에 적응하여야 한다. 바이러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정말로 무서운 인간바이러스 임에 분명하다.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감히 아직도 이런 질문을 하는 인간은 오만하다! 인간의 과학의 발달이 인간을 바이러스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 믿는다. 발달된 과학으로 면역체계를 더 연구하여 튼튼한 방어체계를 구축이 바이러스로부터 해방을 가져 올 것이라 믿는다. 과연 그럴까? 지난 역사 속의 과학의 발달과정의 패러다임을 살펴보면, 인간이 생각해낸 방어책으로 적용한 면역체계는 또 다른 바이러스의 변종을 가져 왔다. 결국 생명체로 존재하는 한, 인간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해방된 완벽한 환경을 구성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참담한 이야기지만,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환경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기구(ESA)의 위성이 포착한 사진에 따르면, 중국 상공의 이산화질소(NO2) 농도가 줄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한 중국의 굴뚝경제의 후퇴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 관점에서의 현대의 과학은 재앙의 근원이다. 우리는 너무나 작은 것을 얻으면서, 너무나 고귀한 자산을 파괴하는 우주의 인간바이러스로 전락한 것 일 수도 있다. 인간의 과학은 공학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목적에 맞는 것을 만들어 사용하기에 바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든 몰랐든, 우리 인간바이러스의 생각은 유치찬란하다.

인간은 인간바이러스 자신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 인간은 바이러스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상에 정복이란 없다. 바이러스들은 좀 더 겸손히 공존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이 거대한 우주에서 본다면,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의 바이러스이다. 인간이란 바이러스가 이 대우주의 시스템을 공격한다면, 인간은 결단코 공격의 대상이 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공존의 틀 안에서 각자가 존재한다. 그 안의 각자를 공격하여 소멸시키면 결국 자신도 소멸된다. 인간바이러스, 그들도 이제는 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바이러스 변종으로 태어나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인간바이러스, 자신들의 존재를 위하여 자연과의 공존을 통한 해법을 시급히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삼월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으로 변종된 인간바이러스들은 마스크를 쓰고, 소독을 하면서, 서로 다른 바이러스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의 어깨 위에 걸쳐진 삼월의 햇살의 눈길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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