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풀 줄기 인피섬유를 이용해 짠 직물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즈음 모두가 공통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을까?'일 것이다. 에어컨과 선풍기 등도 유용하게 사용 될 수 있겠으나 그 보다 우선은 한 여름 입고 다닐 옷이 먼저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선조들이 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선택한 옷감은 무엇일까? 바로 모시를 들 수 있다.

모시는 쐐기풀과 다년생인 모시풀 줄기의 질긴 인피섬유를 이용하여 짠 직물이다. 모시의 주 원료인 모시풀(저마)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로 알려져 있을 뿐 분명치 않다.

이러한 모시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백제 성왕 때로 중국 남조를 통하여 들여왔다. 이후 통일신라 때에는 모시를 중국으로 수출할 정도로 그 직조기술이 뛰어났으며, 고려시대에도 잿물에 담갔다가 솥에 쪄 내어 빛깔이 하얀 모시인 '백저'가 고려 특산물로 이름을 얻었다.

조선시대에는 백세저포, 황세저포, 홍세저포, 자세저포 등 모시에 염색된 것이 많이 생산되었다. 조선시대의 저마 생산지로는 한산, 홍산, 정산, 서천, 임천, 부여, 비인, 감포를 들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그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한 곳이 한산 모시였으므로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모시는 다년생의 모시풀이 2m쯤 성장하면 수확하는데 1년에 3번, 즉 5월말에서 6월초(초수), 8월초에서 8월 하순(2수), 10월초에서 말(3수)에 한다. 수확된 저마(苧麻)의 껍질을 벗겨 태모시를 만든 뒤에 물에 4∼5회 정도 적셔 일광 건조를 시키고 표백한 뒤 쪼개어 서로 연결시키는 데 이를 '모시삼기'라 한다.

실은 태에 담아 노끈으로 십자로 묶어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굿 10개가 한 필의 원사량이 된다. 10개의 모시굿에서 '젓을대'의 구멍으로 실 끝을 통과시켜 한 묶음으로 하여 날틀에 걸어 한 필의 길이에 맞추어서 날실의 길이는 날고 새수에 맞추어 날실의 올수를 맞춘다. 모시날기가 끝난 날실(경사)을 새 수에 맞는 바디에 끼워 한 끝은 도투마리에 매고 또 한끝은 '끌개'에 말아 고정시킨 뒤 콩가루와 소금(흡수제)으로 만든 풀을 솔로 바른 뒤 날실 옆에 피운 겻불로 천천히 말려 도투마리에 감는다.

모시를 짤 때에는 날실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다리' 위에 올리고 바디에 끼운 날실을 빼어 2개의 잉아에 번갈아 끼우고 다시 바디에 끼워 '매듭대'에 매고 홍두깨에 감아 날실을 긴장시켜 놓는다. 베틀의 쇠꼬리채를 발로 잡아 당겨서 날실을 벌리고 손으로 준비된 씨실(위사)이 담긴 북을 좌우로 넣어서 모시를 짠다. 이때 공기가 건조하면 날실이 개구운동 또는 위입운동 때 끊어지므로 적당히 습도조절을 해야 한다. 특히 10새 이상의 세모시를 짤 경우에는 더욱 주의하여야 한다.

이러한 모시의 과학슬기로는 먼저 뛰어난 통풍성과 수분의 빠른 흡수 그리고 건조가 잘 되어 무더운 여름철의 옷감으로 제격이라는 점, 섬유질이 질기기 때문에 오래 입어도 잘 헤어지지 않는 점, 색깔이 백옥처럼 희고 맑아 고결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는 점, 세척 할수록 희어지고 윤기가 돋아 항상 새 옷 같은 느낌을 주는 점을 들 수 있다.

모시는 천연섬유로 통기성이 좋고 질겨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여름옷으로 이에 비길 만한 것이 없다. 이에 모시에 현대과학기술을 접목시켜 고부가 가치의 고기능성 섬유를 다양하게 개발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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