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기획연재 > 충청교육100년
김홍도 예술혼 숨쉬는 '역사를 품은 배움터'괴산 연풍초
지홍원  |  news@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9.07.02  20:36: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연풍초등학교는 1908년에 개교하였는데, 이 당시는 일제 침략기로 1905년 전후 노골화된 식민지 침략으로 인해 근대적인 공교육체제는 싹도 자라기 전에 심각하게 왜곡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1909년 8월 31일 연풍향교의 명륜당에서 사립연명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시작하였고, 1912년 4월 1일 연풍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했다.
1922년 일제는 조선학교령을 개정해 보통학교를 6년제로 연장하였으며, 1938년 4월 1일에는 연풍공립심상소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1941년 4월 1일에는 연풍공립국민학교로 바뀌었다.

다시 1943년 각 급 학교 령을 개정해 취학 전 교육기관으로 유치원을 두고, 그 위에 6년제 국민학교를 두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하였고,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을 맞아더 이상 일본인 교장이 취임한 일은 없었으며, 1949년에는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오수분교장 1학급을 설치하게 이른다.

6.25전쟁으로 교사와 학교 비품이 모두 파괴되어 몇 차례의 휴교와 개교를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전쟁과 복구 등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1962년 50주년 기념식을 거행, 1963년 3월 1일에는 조령분교 1학급을 설립하게 된다. 또한 오수분교는 오수국민학교로 독립개교하기에 이른다. 1970년 3월 1일에는 조령분교를 폐지하고 신풍국민학교로 독립 개교한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학생 수가 줄어들어 신풍국민학교가 연풍국민학교로 통합되고 말았다.

1996년 3월 1일부터는 일제 식민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정립시켜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종래의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연풍초등학교, 오수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2000년부터는 오수초등학교 역시 연풍초등학교로 통합하게 되었고, 2009년 현재 연풍초등학교에는 17명의 유치원생과 110명의 초등학생이 함께 일제 강점기를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저마다의 소질과 재능을 살리는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으며, 기념사업을 통해 잣밭산 복원 및 유래비 건립, 연풍100년 기념비 건립, 타임캡슐 안치사업, 100년 기념 소나무 식재, 개교 100년 기념 역사관(안) 건립계획을 마련했다.

먼저 잣밭산 복원과 유래비 건립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잣밭산은 연풍초등학교 동쪽에 있는 산으로 연풍사람들에게 추억과 남다른 의미가 있는 산이다. 학교가 생긴 이후에 겨울 난방을 위해 땔감을 구하러 무수히 다닌 추억의 산이며 전쟁과 무분별한 땔감 채취로 잣나무가 한 그루도 없어 아쉬워하던 차에 잣나무를 식재하고 유래비를 교문 왼편에 세운 사업이다.

연풍 100년 기념비는 2008년 기준 개교 100년째를 맞아 지나온 역사를 고찰하고 다시 맞는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동문들의 다짐과 100년 후에 있을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기억되기 위해 만든 기린 모녀를 원석으로 깎아 만든 조형물이다.

타임캡슐 안치사업은 개교 100년의 역사를 지켜온 모교와 동문들의 자긍심을 100년 후의 후손들에게 전해주기 위한 사업으로 현재의 학교현황 및 학습자료, 동문회 기록(졸업장 등), 생활용품 등 총 100여점을 넣어 안치했다.

또한 개교 100년의 위대한 역사를 기리기 위해 한국 소나무를 교정에 식재하여 다시 10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7000여 동문과 자라는 후배들에게 한국적 정서함양을 높이고자 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연풍초등학교는 조선시대 연풍현 동헌 자리로 1393년부터 1900년대 초까지 역대 현감들이 집무하던 장소였으며,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 선생이 1791년부터 1795년까지 연풍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재임 시 수많은 그림을 그려, 영 정조 임금의 칭송을 받은 바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에 역사관을 건립해 기념사업과 함께 지역주민과 방문객에게 역사와 전통을 널리 홍보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정확보의 어려움으로 역사관 건립은 안으로 있을 뿐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괴산=지홍원 기자
지홍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비주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