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첫째 주

▲ 충청일보 1970년 4월 4일자 1면.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1970년 4월의 첫째 주에는 일본 항공 소속의 여객기가 극좌파 학생들에 의해 납치돼 북한으로 가려다 김포공항에 중도 착륙한 사건이 연일 1면을 장식했다.
 
△1970년 4월 1일

이날의 1면 머리에는 '總務會談(총무회담) 一日(1일)로 延期(연기)' 제하의 기사가 올라있다.

'협상성패를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與野總務會談(여야총무회담)이 하루하루 연기되는 가운데 共和(공화)·新民(신민) 兩黨(양당)은 선거관계법 개정안의 미합의 부분과 선거구 증설문제의 마지막 절충에 몸부림치고 있다. 共和(공화)·新民(신민) 兩黨(양당)은 당초 31日(일) 하오 3시 총무회담을 열 예정이었으나 미합의점에 대한 절충을 더 시도키 위해 공식총무회담을 1일 상오10시로 다시 연기했다'는 내용이다.

1면에는 바로 옆에 다른 주요 기사로 '보잉機(기) 北傀(북괴) 拉致(납치) 미수'가 실렸다.

내용은 '31日(일) 上午(상오) 7時(시)52분 동경 「하네다」공항발 九州(구주)후꾸오까로 향하던 日本(일본)항공사 所屬(소속) 「보잉」727기가 「나고야」 상공에 이르렀을 때 학생 차림을 한 남자 약 15명이 조종실로 침입 그중 2명이 「단도」에다 폭탄같은 물건으로 위협하면서 『평양으로 가라 실패하면 자폭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동기 기장 「이시다신지」씨는 즉시 공항관제탑에 연락하는 한편 연료공급을 이유 「이다쓰께」공항을 向(향)해 아침 9시 동공항에 착륙했다. (중략) 機內(기내)에서는 기장이 승객만을 내려주고 떠나자고 제안하자 학생들은 안된다고 하며 옥신각신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다.


△1970년 4월 2일

전날에 이어 납치된 보잉기 기사인 '目的地飛行(목적지비행) 許容(허용)될 듯' 제하의 기사가 머리에 올라있다.

'15名(명)의 日本極左派學生(일본극좌파학생)들에 依(의)해 拉致(납치)되어 北傀(북괴)로 가는 途中(도중) 金浦空港(김포공항)에 유도着陸(착륙)된 「잘」 所屬(소속) 「보잉」727 旅客機(여객기)는 着陸(착륙)한지 21時間(시간)이 지난 1日(일) 上午(상오) 12時(시)15分(분)까지 滑走路(활주로) 맨끝 잔디밭에 처박힌채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機內(기내)에 있는 승무원승객 1백명은 不安(불안)과 전률속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1970년 4월 4일

납치된 채 김포공항에 착륙해 있는 일본 항공 여객기의 승객들에 대한 기사인 'JAL機(기) 乘客(승객) 곧 救出(구출)' 제하의 기사가 이날도 1면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3時間(시간)에 걸친 韓(한)·日(일) 양국의 끈질긴 說得(설득)은 劇的成功(극적성공)을 거두어 「잘」機乘客(기승객)들은 마침내 3日(일)중으로 金浦空港(김포공항)에서 풀려나오게 되었다'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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