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탁 충북보건과학대 교수

[충청광장] 코로나19의 극복은 상생의 힘으로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낯선 질병으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 중 하나는 전염병이었다. 스페인 독감은 1918∼1920년까지 전 세계를 강타해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 있다. 페스트는 1347∼1352년 기간에 유럽을 중심으로 크게 번져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인 1,800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페인 독감과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 숫자도 엄청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역병들이 오랜 기간 창궐해 스페인 독감은 2년, 페스트는 5년 동안 계속됐다는 것이다.

이렇듯 창궐하면 끝을 알 수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사투에서 이겨내기 위해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수칙들을 철저히 따르는 방법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라 보이지 않는 적은 언제나 두려움의 존재이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마치 전쟁에서 게릴라전을 연상하듯 지구촌 전체를 괴롭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진정되고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최대한 모두가 조심하는 수밖에는 다른 묘안이 없다. 스스로 조심하고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런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상호 이해와 존중,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전염병과의 버거운 싸움에서 서로를 힘들게 하는 비난과 불신은 지양돼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감이 점차 커지고 일상생활이 마비된 스트레스로 감염자들이 타깃이 돼 온갖 비난과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는 것도 자제함이 마땅하다. 물론 사회적 불안을 조장하는 일부 지탄받아 마땅한 대상도 있긴 하지만 일반 감염자들과 접촉자들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과 조롱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더 무섭게 다가올 뿐이다.

어느 누구도 감염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내가 만난 사람이 감염자임을 사전에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울러 특정지역에 거주하는 감염자들과 더 나아가 그 지역의 사람들을 통째로 비난하는 것도 자제함이 마땅하다. 무슨 이유로 이들이 비난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지역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들을 보듬어 위로하고 도움을 줄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지혜로운 대처 방법이다. 이렇게 비난을 일삼는 사람도 언제 어디서 감염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적 상황일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불신과 비난보다 희망과 나눔의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이다. 전국 각지에서 각종 비품을 챙겨서 보냈고, 부족한 의료진과 병상마련은 외지의 의료진들이 자원해서 들어갔다. 또한 전국의 여러 지자체가 대구·경북에 부족한 병상을 지원하겠다며 확진자에게 병원 문을 열었고 시민들은 환영현수막으로 그들을 위로했는가 하면 착한 임대료 운동 또한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모르긴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들이 늘어가고 사회적 피로도의 누적으로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고, 비난과 의심의 확산이 주체할 수 없이 덮쳐올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어 역설적으로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다. 인류사에서 우리 인간은 악명 높은 바이러스들을 모두 이겨냈다. 모두가 상생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해와 배려, 나눔과 베풂, 성숙된 시민과 이웃의 공동체 바이러스만이 하루 빨리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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