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오로지 곡양 이씨 13대 손을 얻기 위하여 보은댁의 부탁으로 씨받이를 해 주고 그 대가를 받기로 약조가 되어 있는 공개된 신분이다.

그런데도 들례는 옥천댁 앞에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했다. 옥천댁이 무서워서는 절대로 아니다. 언젠가는 공개된 이동하의 첩이 되는 그 날까지는 옥천댁을 자극해서 이동하를 화나게 해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고개를 외로 돌려서 이동하가 사용하고 있을 놋쇠 재떨이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옥천댁은 들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재떨이를 바라본다.

이동하가 사용을 하고 있을 그 재떨이의 날개에는 영동군청청사 확장기념永洞郡廳廳舍 擴張記念이라는 한자가 부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재떨이와 똑같은 재떨이가 시아버지 이병호가 기거를 하는 사랑방에도 있었다.

옥천댁은 자신의 집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사랑방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 똑같은 글씨가 써져 있는 재떨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함을 억지로 참느라 입술을 깨물면 피가 까맣게 응고가 되어 버린 핏덩이. 그 핏덩이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으려 할 때 전신이 떨리는 느낌과도 같았다. 하지만 들례 앞에서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새삼 분노를 터트려봐야 서로가 우세스러울 것 같았다. 마음을 굳게 다져 먹기로 하고 조용히 들례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앞으로 워칙할 생각이여?"

"워칙하다뉴?"

"은제까지나 학산 바닥에서 있을 거냐. 시방 이 말을 묻고 있잖여."

"떠나야쥬……"

들례는 말처럼 학산을 떠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 없이 옥천댁에게 대들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거라는 생각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맘을 바로 먹고 있어서 다행이구먼. 들례가 맘을 바로 먹고 있는 것츠름 보여서 하는 말잉께 내 말 똑똑히 들어. 들례는 나이도 나 보담은 두 살이나 어리잖여. 안직은 얼매든지 팔자를 고칠 나잉께 내 말을 너무 섭하게 생각하믄 안되는 거여. 그라고 나도 도리를 영판 모르는 여자는 아녀. 들례가 학산을 떠나게 되믄 아버님이나 바깥양반이 생각하고 있는 것 외에 따루 섭섭하지 않게 해 줄 생각을 갖고 있어. 그랑께 여하튼 시방 보다는 먼 앞날을 생각하고 하루라도 빨리 결단을 내리란 말여.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겄지?"

옥천댁은 들례가 마음을 달리 먹으니까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들례가 불쌍해 보였다. 독설을 퍼붓는 대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해 주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마님, 죽을 죄를 지었구만유."

들례는 옥천댁이 이외로 부드럽게 대해주자 이렇게 착한 여자의 마음속에 상처를 입혔다는 생각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산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눈물이 나는 것은 단순히 옥천댁에 대한 동정심이지 이동하하고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옥천댁은 들례를 믿기로 하고 수중에 가지고 있던 얼마간의 돈을 내 놓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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