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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식 청주 충북대 사대부중 교사 |
자녀가 말을 잘 들어 참 좋다며 자랑을 하는 부모가 있다. 어른의 규칙이나 습관에 척척 잘 따라주어 기특하다고 자랑을 하는 부모가 있다.
여자아이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더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몸이 아파서 1년을 넘게 누워서 지냈다.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펴 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이가 세 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가족의 관심은 남동생에게 집중되었다.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아이는 남동생이 먹는 우유를 빼앗아 먹는 돌출 행동을 했다. 가족은 아이를 나무랐다.
아이는 또 소외되고 버림받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착하지? 말썽 피우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돼.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참 착하네?
아이는 꾸중을 듣고 소외되는 것이 두려웠다. 부모에게 인정받으려면 말을 잘 들어야 했다. 점차 자라면서 아이는 정말로 부모의 말을 잘 들었다. 그러나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와 마주치고 대화하는 것조차 꺼렸다.
칭찬을 듣기 위해서는 그저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버린 아이는 자신을 억압해야 했다. 잘 들어야 할 말의 의미는 부모가 정한 규칙이다. 부모의 규칙에 따르기 위해서 아이는 자신을 감추어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뜻에 따라 착해져야 했다.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솟구치는 호기심을 억눌러야 했다. 창의적인 생각을 펼칠 수가 없었다. 부모를 비롯한 타인의 뜻을 따르는 데만 익숙해졌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고 일에 대한 판단력과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실패와 잘못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 매사에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이 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이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면서 패배감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부모의 규칙을 말로 강요하지 말자. 말에 앞서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의 방식을 모방하고 답습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조직도 그렇다. 상급자의 개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하급자는 자신을 억누르고 순종의 자세를 취한다. 하급자는 상급자의 별스런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자신의 능력을 섣불리 나타내지 않는다. 실수할까 조바심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발전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상급자가 설렁탕을 선택하면 조직원 모두 기계적으로 설렁탕을 선택하는 조직이 있다. 반면에 냉면과 비빔밥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조직이 있다. 획일적인 문화가 강요되는 조직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조직의 모습이다. 어느 조직이 창조적이며 발전적일 것인지의 판단은 아주 쉽다.
자신을 돌아보자. 말을 잘 듣는 아이를 강요하는 부모가 아닌가. 하급자는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개인의 능력을 감추고 눈치만 보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소유하고도 머뭇거리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녀가 말을 잘 들어서 참 좋다는 자랑을 함부로 하지 말자. 하급자가 자신의 뜻에 무조건 순종한다고 좋아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