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얼마 전만 해도 아무 의식 없이 밖에 다녔지만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이고 지역 간 이동도 자제하고 있다. 어디든 다시 훌쩍 떠날 수 있을 때를 기대하며 지금은 다시 가고 싶은 기억 속 여행을 소환해본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작년 7월, 강원도 양양 미천골 자연휴양림에 있었다. 숲속의 집 휴양림 방과 텐트를 칠 수 있는 데크를 같이 예약했다. 숲속의 집은 휴양림 입구 바로 안쪽에 있고, 데크를 예약한 제 1야영장은 숲속의 집 숙소에서 4.1 킬로미터 정도 더 골짜기 안에 있어 휴양림 방과 텐트를 오가며 숲속 산책을 했다. 미천골은 7킬로미터나 거의 경사가 없이 완만한 평지로 계곡이 이어진다.

휴양림 입구에 있는 방에서 계곡 옆길을 따라 안으로 걷다보면 선림원지가 나온다. 804년에 창건된 선림원은 홍각선사가 번창시킨 사찰로 당대 최고 선수련원이었는데, 10세기 전후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되었다가 다시 발굴되었다. 선림원이 번성하였을 때 매끼 쌀 씻은 물이 계곡아래까지 흘러 미천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길 옆 돌계단으로 올라가니 확 트인 넓은 선원 터가 나왔다. 넓은 터 초입에 거의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된 선림원지 삼층 석탑(보물 444호)이 세워져 있고 도량 터 저 안쪽에 유적에서 발굴된 석등(보물 445), 홍각선사 탑비(보물 446호), 승탑(보물 447호)이 세워져 있다. 1200년 역사의 숨결이 깃든 유적들이다.

다시 계곡을 따라 걷는다. 나무와 맑은 계곡, 깎아지른 기암괴석들이 계속 이어진다. 바위 틈새로 나무들이 자라난 모습이 계곡 풍경에 다채로운 멋을 더해준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계곡 양 옆으로 곳곳에 좁고 가늘게 흘러내리는 폭포들도 멋들어진다. 계곡을 따라 몇 번 다리를 건너게 되어 있어 계곡이 오른편에서 보이다가 왼편에서 보이다가 위치를 달라진다. 연한 오렌지빛 나무 난간이 계곡의 풍경에 산뜻한 파격을 주는 아담한 목조다리 ‘한아름교’도 건넌다. 한아름교를 건너 조금 더 가다보면 곧 우리 텐트가 있는 제 1야영장이 나온다. 텐트 바로 옆으로 계곡물이 흐른다. 처음에는 발만 담갔다가 차츰 몸까지 담근다. 가까운 양양시내에 나갔을 때 양양시장에서 사온 물신을 신고 물에 들어갔다. 물놀이에 물신은 처음이다. 물에서 나올 때 다시 발을 말리고 신을 신을 필요가 없다. 흐르는 물살이 몸에 닿는 느낌도 좋다. 계곡 물소리는 밤새 시끄럽게 울려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감미롭다.

계곡 더 안쪽에 있는 미천골정도 보러갔다. 깊은 계곡도 평지처럼 경사가 완만하다. 깊은 계곡 쪽에는 흰 바위들로 풍경이 변한다. 미천골정에서는 삼직폭포 비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미천골 마지막 밤, 별을 보러 나갔다. 처음에는 큰 별빛 한두 개만 보이다가 눈이 어둠에 차츰 적응하면서 주변 별빛들이 하나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하늘 가득 별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들여다볼수록 별들이 촘촘해진다. 미지의 천체들로부터 수십억, 수백억 광년을 건너온 광선들과의 조우, 지난여름 미천골에서 누린 우주적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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