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충청의창]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코로나19의 확산이 가져온 삶의 제한이 체감으로 3년은 흐른 것 같다. 며칠 전 한 방송에서 9년간 ‘초로기 치매’ 아버지를 간병한 어느 한 청년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간병의 끝에 몰린 간병인들의 고통과 절규를 조명했다. 주변에서 모두가 효자라고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다. 그런데 직접 만난 그 청년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청주에서도 한 아파트 화단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한 남자(49세)를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그의 집에는 목 부위가 눌린 흔적이 있는 아버지(85세)가 숨져 있었다. 아들은 유서에서 “아버지를 데려간다. 미안하다”고 썼다.

지난 3월 제주도에서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삶 자체가 너무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서울 중랑구에서는 40대 아들이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몸이 아픈 아내를 15년간 간호해 온 80대 노인이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중태에 빠졌던 경우도 있었다.

긴 병(病)에 효자(孝子) 없다는 옛말이 사실인가? 지병을 앓는 노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수발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잖다. 오랜 세월 힘든 여건 속에서도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를, 더없이 사랑하는 자식을, 100년 해로를 약속한 반려자를 용서받지 못할 선택으로 저버리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는 장기간의 간병에 한계를 절감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패륜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오랜 기간 치매나 정신질환 등을 앓아온 가족을 돌보다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간병 살인’이라 한다. 간병 살인은 1980년대 일본에서 처음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증가추세에 있다. 물론 그들은 예외 없이 가족을 죽인 패륜 범죄자이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잃어가는 부모, 급성뇌경색에 걸린 배우자, 선천성 발달장애를 앓는 자식까지 대상도 이유도 다르다. 그러나 한때는 주변에서 희생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사람들이기도 했다.

간병 살인과 간병인 자살은 간병기간이 속수무책으로 길어지면서 빚어진다. 극심한 생활고와 감당할 수 없는 간병 비용이 주요 원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가족이 돌봄을 모두 떠안을 경우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요인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제주도 사건도 코로나19로 학교가 쉬어 집에서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이 가중되며 발생한 사건이다. 발달장애 학생 1명당 120시간 가량의 돌봄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턱 없이 부족하다.

치매나 장애 가족을 돌보다가 범죄가 발생하는 건 분명한 사회의 탓이다. 간병이나 돌봄 가족들의 비극적 삶을 돌보려면 사회안전망 차원의 사회복지를 더 촘촘하게 짜야만 한다. 간병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복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포괄적 간호 서비스, 장기요양보험 서비스 대상 범위 확대, 간병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을 통해 간병부담을 줄여야 한다. 간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병상의 자식과 배우자, 노부모를 숨지게 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비극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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