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5장 6월의 동화

▲ <삽화=류상영>

김춘섭이 황인술이 들으라는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그는 그저께 학산에 사는 배 목수로부터 오늘 뒷모도를 해 달라는 연락이 왔었다. 일당으로 치나 대우로 치나 모내기보다 목수 뒷모도가 훨씬 유리하다. 땡볕에서 모를 심느라 손가락이 부러지는 듯한 아픔을 견뎌낼 필요도 없다. 설렁설렁 뒷모도를 해주는 일인데도 일당이 곱절인 쌀 두되다. 담배도 파랑새가 두 값이다. 새참으로 비싼 자장면에 탕수육을 주는 집도 있다. 황인술이 이병호의 집만 들락거리지 않았어도 지금쯤 고량주에 탕수육을 먹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황인술이 이병호의 집을 들락거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거기, 시방 말한 사람 춘셉이 목소리 같은디. 춘셉이 그라는기 아녀. 내가 언지 틀린 말 하는 거 봤남?"

"그람 내가 틀린 말을 했다능규?"

김춘섭은 마치 경매장에서 경매사가 손을 흔들며 숫자를 세듯히 빠르게 일곱 포기를 파바박 심었다. 허리를 벌떡 일으키고 황인술 쪽을 바라본다. 모두들 허리를 숙이고 모를 내고 있는 가운데 군복을 입은 황인술의 모습이 보인다. 황인술도 아직 허리를 피지 않았다.

"난 아무런 사심이 읎이 말을 했는데 내 말에 된장을 바르는 것츠름 들링께 하는 말이잖여."

황인술이 뒤늦게 허리를 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피고 뒷걸음 치고 있어서 김춘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허리를 앞으로 빼서 밀짚모자를 쓴 김춘섭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장님 말이 개고기유 된장을 바르게?"

못줄이 뒤로 넘어왔다. 김춘섭은 황인술을 바라볼 사이도 없이 허리를 숙여서 빠르게 모를 꽂았다. 자기 옆에서 모를 꽂고 있는 날망집이 심을 자리까지 두 포기 꽂고 난 후에 허리를 피고 황인술을 바라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모도 제대로 못 심는 작자가 욕심만 많아서 열 마지기짜리를 차지하려고 이병호에게 갖은 아첨을 다 하는 것 같았다. 그 결과 논을 부치기로 어느 정도 내정이 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논에 모를 내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 뉘여. 고 앞에 있는 모가 떴잖아. 그거마저 심어. 그라고 상의할 일이 있으믄 이따 즘심 먹으믄서 하기로 하고 시방은 빨리빨리 모나 심어. 모심으믄서 상의하다 해 전에 어림도 읎겄어."

박평래가 못줄을 뒤로 넘기면서 황인술과 김춘섭이 들으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장 말도 맞고, 춘셉이 말도 맞응께 더 이상 엉뚱한데 심 빼지 말고 모나 심어. 헛심키다 보믄 더 힘든 법잉께."

박평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씨도 거들었다.

황인술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만히 있는데 나이도 어린 김춘섭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놈도 소문 없이 이병호를 찾아 간 것 같았다. 이병호한테 뭔 말인지 들은 말이 있어서 비아냥거릴 거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말꼬리를 감추는데 뒷모쟁이를 하는 해룡이 실실 웃으면서 등 뒤로 못단을 던졌다.

"헛심을 키다니. 난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이지. 별 다른 뜻은 읎슈…… 앗 차거! 거 사람을 보고 못단을 던져야지. 방딩이 바로 밑으로 못단을 든지믄 나 보고 워티게 해달라는 거여."

황인술이 못단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겨서 엉덩이를 적시는 감촉에 벌컥 화를 냈다.

"워내! 시방 구장님이 뭐라고 하시능겨?"

"못 들었남. 해룡이가 방딩이를 건들였댜."

황인술은 아낙네들이 킥킥거리는 말을 듣고 나서야 뒤를 돌아다 봤다. 술을 마셔서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해룡이 팥죽같은 땀을 흘리며 삐질삐질 웃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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