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지난달 초등학교 친구 아들 결혼식이 있어 서울엘 다녀왔다. 결혼식을 은혜롭게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커피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그러다 서울 사는 친구가 멀리서 온 친구들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며 맛 집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매고 다녔다. 그런 친구의 뒷모습을 보니 유난히 굽은 등이 눈에 들어온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친구의 굽은 등을 어루만지며 “친구야, 등이 왜 이렇게 굽었어?” 하자 친구가 어렵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은 학교로 직장으로 떠난 고향에 살면서 지게질을 하도 많이 해서 그렇단다. 친구들이 떠난 그 곳에서 농사일을 돕던 친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집 나갈 결심 하고, 떡메로 지게를 부수어 아궁이에 던져 태웠단다. 무일푼으로 나갈 수 없어 아버지의 소 판돈 일부를 훔쳐 그대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아무계획도 연고도 없이 무작정 올라온 서울은 어린 시골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도 배가 고파 자장면 식당에 가서 설거지는 할 수 있으니 자장면 한 그릇만 달라고 했단다.

그렇게 며칠을 설거지를 해주고 밥을 얻어먹었단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왔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 도망가고 싶던 중, 배달을 하라 하여 배달가방을 들고 나와 화장실에 버리고 그길로 도망을 쳤단다. 도망을 나와 무작정 헤매다가 철공소 앞을 지나다 용기를 내어, 기술을 배우고 싶으니 여기서 일 하게 해달라고 목숨을 걸고 매달렸단다.

그때 철판 위에 박스를 깔고 잠을 자면서 배운 기술로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철공기술을 배우던 친구가 나중에 자장면 집을 찾아 잘못을 빌고 싶어 찾아 갔지만 없어졌다며 아쉬워했다.

그 친구가 말을 마치자 옆의 있던 친구가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가 가고 싶어 며칠씩 밥도 안 먹고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돌아올 때면 일하다말고 얼른 가서 숨었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교복 입고 학교에 가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필자가 졸업할 때만 해도 중학교에 많이 못 갔다. 남자애들은 그래도 많이 갔는데 여자애들은 거의 못 갔다. 필자도 2년 후에 중학교를 간신히 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소 판돈을 훔쳐 무작정 상경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한 삶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 잔을 서로 나누며 살고 있다는 친구가 자랑스럽다. 학교가 가고 싶어 밥을 굶었던 친구도 어린 핏덩이를 입양하여 어엿한 청년이 된 지금까지 잘 키우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한가!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친구들을 보면서 인성이 최고의 덕목이지 싶다. 친구의 자랑스럽게 굽은 등을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친구들에게 잘 살았다고, 고생했다고 큰소리로 외쳐본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키듯이 오늘도 묵묵히 산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 힘이 난다.

긴 세월 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고 간직했던 진실한 고백을 들으며 이제는 말 할 수 있는 그들의 자신감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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