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

할머니는 / 세어도 세어도 끝없는 세월 / 한웅 큼 움켜 세다 하얗게 되셨다. / 무명을 엮던 날짜 거스르며 / 손바닥에 달라붙은 모래알 숫자를 / 한 알 두알 떼다보니 / 어느새 마른 눈엔 노을이 비친다. / 필자의 동시 ‘모래알 세기’ 전문이다.

내가 대학입학 필기시험을 보던 날 김신조 일당의 1.21청와대 습격으로 움찔했다. 우린 입시를 위해 열공할 때 북한 또래들은 게릴라전에 목숨을 걸었으니 운명치고 너무 가여웠다. 8년 뒤 공교롭게도 필자가 교단에서 ‘평화 통일 글쓰기’ 지도 중 판문점 도끼만행 특보를 들었다. 얼마 후, 교원 안보 연수 일행으로 그 공동경비구역 내 살인사건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분단·아픔·세월까지 뜸들인 ‘평화의 숨고르기’조차 민망하다. 6.25전쟁 70주년 현충의 헌시(獻詩) 몇 줄, 아직은 훈풍보다 시린 몸살을 앓는다.

1983년, KBS 1TV 특별기획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는 웃다 울다 까무러치며 전쟁 부위를 시리게 했다.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어린이 문예’ 진행 차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마다 건물 앞 '만남의 광장' 담벼락을 빼곡히 메운 애끓는 절규, 악몽과 다름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써 붙인 것과 아예 몇 달 동안 거르지 않고 꼬박 광장을 지킨 낯익은 노파의 수척함 모두 찍혀 있다.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 시나요” 생사조차 모르던 33년 혈육에 불을 지핀 드라마 같던 실화는 당시 1만 여건의 ‘그래 맞다 맞아. 나야 나’ 상봉을 성사 시켰다. 마침내 남·북간 이산가족 인도적 해결로 이어지면서 20차례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포옹까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6·25전쟁 정전 후 처음 남·북 정상은 한 달 간격으로 군사분계선을 번갈아 넘으며 판문점 평화 프로세스 구도를 진척시켰다. 친교 산책·도보다리 위 담소·풍계리 핵실험 장 폭파는 에이 플러스(A+) 금세기 최고 그림 맞다. 그러나 감개도 잠깐 북·미 간 거래로 이어진 ‘먹히지 않는 답안’은 반목을 되풀이해 왔다. 마침내 북한은 남북통신연락망 차단과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은 ‘군사도발 불사’ 등, 도통 종잡기 어려운 대남 위협 말 폭탄을 날리고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한반도 평화의 ‘명시적 거부’ 가 확실하다.

"군사적 도발을 끝내 감행한다면 군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할 것" 국방부장관의 최고 수위 대북 경고 메시지와 달리 21대 국회는 법사위원장 자리 욕심에 얽혀 사실 상 파업 상태다. 섣부른 평화의 낙(樂) · 비관(悲觀)에 앞서 허튼 안보 내공(內工)부터 다져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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