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양명' 과 거리 먼 고향 사람들
끝내 사퇴하고 말았지만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석상에서 여당의 모 의원이 했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용인즉슨 "검사 생활 24년에 모아놓은 재산이 '(겨우) 14억' 밖에 되지 않는다니 매우 청렴한 사람임에 틀림없다"라고 했다는 허무개그 성 발언.
장마에, 더위에 그렇잖아도 불쾌지수가 범람하는 이 때, 누구 복장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지 정말 해도 해도 너무들 한다.
하기야 어느 라디오 뉴스를 듣다보니 서울의 집값이 웬만한 지방에 비해 열배 정도는 비싸다고 하던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깟(?) 14억쯤은 서울의 집 한 채 정도에 해당되는 금액에 불과하니 그 '칭찬'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주말엔 시골 고향에서 작은 행사를 치렀다.
여러 해 전부터 연례적으로 해오던 행사인데, 고향 떠난 이들이 향수에 겨워 1년에 한 번 시골의 어른들을 모시고 인사도 드리고, 웃고 떠들며 정을 나누는 흥겨운 자리였다.
마침 장마 중이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나 고향 양쪽 동네의 어른들이 너나없이 나오시어 조촐한 음식을 들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른들을 뵐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내 어머니도 마찬가지이지만 지팡이에 의존하고 주름 패인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하다.
평생 농사일을 떠나지 않고 지금도 당연지사 한 몸 뉘일 공간으로 만족하며 자신의 운명을 묵언으로 받아들인 그들. 내 고향 밤소, 거기엔 지금도 한 치의 거스름도 없이 자신의 삶을 단지 자연의 일부로 내맡긴 나의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또 다른 어른들이 계신다.
가끔 접하는 시골 풍경과 村老들의 모습에서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뿐 만이 아닐 것이다.
적막이 감도는 세상, 도회지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런 표현, 이런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출세를 하고, 재산을 모으고, 소위 立身揚名의 찬란한 길을 좇아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에 비추어 본다면 한없이 어리석고 우둔하기만한 그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수려한 산천을 뚫고 동네 앞으로 느닷없이 흉물스런 도로가 지나가도 하늘만 쳐다볼 뿐, 항변 한 번 못하는 그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불편한 생활방식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그들.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그저 따뜻한 밥 한 술로 어울려 정을 나눌 수 있는 자리라면 이제껏 지친 육신마저도 봄눈 녹듯 허물어지는 무지렁이의 삶.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빚어진 씁쓸한 뒷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주말에 있었던 고향 어른들과의 만남을 다시금 새겨 본다.
화려한 세속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더 높게 오르기 위해 온갖 악취를 풍기면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지체 높으신 양반들. 또 그걸 비호하고 부추기는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
이 극명한 두 가지 단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여전히 장마가 이어지는 여름의 중턱, 살기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지만 정녕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가치와 情理를 잘 살려간다면 이제껏 꿈꾸어 온 세상이 어디 다른 데로 가랴. 그 길을 찾아 두 눈 부릅뜨고 자신을 가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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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성 사무총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