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장 6월의 동화
포마드를 잔뜩 바른 머리카락을 머리에 착 붙이고 양쪽으로 가르마를 탄 모습에서 어딘지 모르게 후지모토의 얼굴이 그려진다.
"비싼 밥 먹고 욕 읃어 먹을 필요도 읎지만 무식한 놈들에게 낚싯밥을 던져서 소출이 는불어 난다믄 그걸 못하는 놈이 등신이지."
이병호는 상아로 만든 흰색 파이프 구멍에 건설 담배를 꽂는다. 이빨로 파이프를 머금는 순간 묵직한 감촉이 기분 좋게 전해진다. 성냥불을 붙여서 담배 연기를 기분 좋게 빨아 들였다 내뿜으며 가늘게 뜬 눈으로 보은댁을 바라본다.
"백 마지기가 넘는 땅 중에서 제우 열닷 마지기 땅 소출을 늘릴라고 그짓말을 해유? 나 같으믄 그런 짓은 안하겄슈. 먹고살기 읎다믄 몰라도, 학산면 사람들이 죄다 인정을 해 줄 정도로 떵떵거리고 살믄됐지 그기 무슨 추탠지 모르겄네. 나이나 짝아, 환갑 지나고……"
"봉황의 짚은 뜻을 참새가 워찌 알까. 이 예핀네야 둥구나무거리에 있는 땅은 낚시밥여 낚시밥. 무식한 것들이 그 땅이 낚싯밥인지도 모르고 워틱하믄 그 땅을 읃을 수 있을까 하고 밤이슬 맞으믄서 일을 했응께, 작년에도 전체 도조가 서른 가마니나 늘었단 말여. 인제 내 말을 알아듣겠어. 내가 왜 비싼 밥 처먹고 그짓말을 할 수 벢에 읎는지?"
"그래도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거 가튜. 밥만 먹어도 배가 부른디, 욕까지 읃어 먹으믄 배가 터져 살 수가 있겄슈?"
"이러니 여핀네는 밥상 들고 문지방을 넘으믄서 열두 가지 생각을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야, 이 예핀네야. 나 혼자 잘 처먹고 잘 살기로 치자믄 미쳤다고 이 바닥에서 무식한 것들하고 말 섞으믄서 살고 있겄어. 진작에 손 털고 도회지로 나가서 수돗물로 세수함서 편하게 살지."
"이 골짝에 살아도 맘만 편하믄 되지. 꼭 도회지로 나가야 맘이 편할 이유는 또 뭐유?"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잉께 임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생각만 하고 있으셔."
이병호는 쌍안경으로 동네를 슬슬 살피기 시작한다. 모내기철은 강아지 손도 빌려야할만큼 바쁘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갔고, 꼬부랑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를 심고 있거나 밭에 가 있어서 마을은 텅 비어 있다.
어! 저기 뉘여.
심심풀이로 동네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다시 논으로 시선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봉산댁집 옆 우물가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비봉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저수해서 쓰는 우물이다. 오백년 이상이 되었다는 향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우물은 모산 사람 모두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식수가 풍부하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겨울에는 물이 따뜻해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아침에 세수를 하러 가기도 한다.
저수조를 넘쳐서 흐르는 물에는 나물을 씻거나 간단한 빨래를 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남정네들이 등목을 하기도 하는 우물터다. 그곳에서 어떤 여자가 등을 보이고 쪼그려 앉아서 빨래를 하는지 나물을 씻는지는 모르지만 상체를 흔들고 있다. 상체를 흔들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는 모습이 마치 여자가 남자 위에서 요분질을 하는 자세처럼 보인다.
가만, 저 여자가 봉산댁 아녀?
이병호는 호기심이 키를 세우는 것을 느끼며 조리개를 조정해서 피사체를 당겨본다. 대물렌즈 가득 여자의 엉덩이가 들어온다. 무명치마를 바짝 치켜 올려서 허연 허벅지가 보이는 여자가 잠깐 옆을 바라본다. 영락없는 봉산댁의 얼굴이다.
"봉산댁은 냘이 죽은 남편 서방이라 부득불……"
"배떼지에 지름끼가 꼈구먼. 자식새끼도 읎는 과부 주제에 지 서방 지삿상은 푸짐하게 차릴 모냥인걸 봉께?"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