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북대 교수

 

[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이럴 수가! 오래 전에 아주 귀중하다고 생각한 물건을 깊이 넣어두고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실소가 터져버렸다. 이제 그 소중했던 물건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내 자신이 쓰레기 만드는 공장이 되다니,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아무리 귀중한 것도 사용하지 않으면 쓰레기나 다름이 없다. 물건을 사용하다보면 자주 사용하는 것이 있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느 순간에인가 그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눈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마음에서도 잊혀져간다.

더군다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더 쉽게 잊혀져간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아주 쉽게 잊어져 간다. 자주 접하지 못하는 생각들은 잊어버리기 일쑤이고, 자주 접한다고 해도 적어놓지 않은 생각들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의미를 바꾼다. 새까맣게 잊었다가 불현 듯이 나타나는 생각들! 아차! 하고 탄식하게 되는 버려진 생각들! 왜 이것들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일까! 탄식해도 이미 늦었다. 결국 기억되지 않고 실행되지 않는 생각들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잊혀져간 것이다.

잊어진 생각들을 쓰레기 더미에서 파헤치고 살려서 끌어 올리는 작업이 그리 녹녹치 않다. 떠올린 생각들은 주로 과거에 머물러 있고, 기억은 미래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지금의 생각은 현재에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생명체는 시간에 의존한다. 아무리 귀중한 것도 사용되지 않으면 그저 쓰레기로 버려져야 하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생각도 실천되어지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고 쓰레기로 변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는가? 생각도 귀중하게 물도 주고, 자주 바라보아 주고, 많은 애정을 쏟아야 살아 있는 생각이 된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그 많은 생각들이 쏟아내는 비난의 소리가 시끄럽다.

마음속의 쓰레기를 재생한다는 일, 그 또한 그리 녹녹치 않다. 하나씩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고 다독거려 살려내는 과정이 그냥 버려버리는 일보다 수월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학기가 끝나고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진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녹초가 된 몸과 마음은 내가 의도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많은 잊어져간 기억들, 자신이 재생시켜야 하는 검은 봉지 속의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에 아주 귀중하다고 믿어지는 것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본다. 이제 와서야 바라다 보아야하는 현실에서는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다. 빛바랜 편지처럼, 오래전에 전달되어야 되었을 편지는 이제는 의미가 없다. 내 마음 속에 숨겨놓았던 알 수 없는 검은 봉지! 그 검은 봉지 속의 나는 무엇일까? 내가 현재의 생각에 계속적으로 생명을 불어 넣어주지 않는 한, 그 생각은 시들어버린 꽃처럼, 흉측하고 냄새나는 쓰레기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는 쓰레기 양산의 사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귀중한 것은 귀중하게 사용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어찌되었든, 현재도 나의 쓰레기 생산 공장은 성업이다.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바람은 칠월이라 그런지 후덥지근하다. 오늘은 비가 올려나 보다. 하늘이 온통 회색이다. 비가 내리면 시원하겠다. 이 비가 그치면, 파란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