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깝죽깝죽 이 나무 저 나무 만지다가 / 쐐기한테 쏘여 눈물 찔끔 흘리던 날 / 이파리마다 벌레에 갉힌 줄 모르고 / 도란도란 꽃 터지는 소리 / 폴폴폴 등에 업힌 향기를 따라 / 부끄러워 빙그레 웃음 몇 줌 놓고 왔다 / 어렸을 적 식물채집 하러 반나절은 족히 산기슭을 헤매다가 군데군데 해충의 공격을 받았던 무딘 기억으로 쓴 동시 ‘산꽃’ 일부다. 좀 버거워도 좀 어정쩡해도 좀 늘어져도 괜찮은,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가 붐비는 휴가철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아니면 여러 세대 함께 오들오들 별밤을 즐길까. 실컷 골라 먹고 어슬렁거리다 잠깐 엎드려 눈 붙일 ‘집콕’에 빠져볼까. 잘 찍은 쉼표 하나 열 문장도 거뜬히 살릴 수 있다. 이래저래 ‘휴가’란 꽤 촌스러운 듯 무척 고급스런 문장부호 아닌가.

휴가의 바로미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재생산을 위한 창의적 투자 쪽에 무게를 둔다. 인공조미료 없이 요리된 여유요 생명이요 말랑말랑한 동화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동안 장기 간 코로나 관련분야 의료진·공무원·봉사자와 K방역을 지켜온 국민, 휴가를 도리질할 사람 있을까마는 당장 ‘생계 경보음’과 맞닥뜨려 심란하다. 몇 년 전, 휴가 중 법인카드 사용·직원 차량 이용 등 ‘공짜·몰염치·변칙’의 일부 고위공무원 일탈로 두고두고 구설수에 시달렸잖은가. 그게 무슨 죽사발인가.

반면, 결막염 쯤 아랑곳 않고 휴가를 혁신성장과 상쇄한 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일화는 울림이 둔중했다. 엘리트 관료들로 포진된 정부부처 내 흙수저란 거센 외풍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저성장 대비 ‘건전 재정, 사람 중심’ 정책을 펴 나라 살림 균형을 가지런히 다졌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직자들이 총선 행 줄서기로 안달할 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여북하면 고향 음성에서 “생뚱맞은 사람들도 어부지리 공천을 따내는데…” 지역주민 속앓이가 깊었다. 그의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 내용 중 “알아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기 보다 긴 고아를 사용할 여유”란 메시지와 무관치 않다. 경제사령탑 퇴임 후 ‘환난상휼(患難相恤)’을 방조하다시피 장기 휴가로 비쳐진다. 작금의 괴멸적 재정·경제 숨통, 1회용 반짝 주사나 정부예산만으로 턱도 없다. 먹고 살아야 할 일자리 안정이 우선이다. 바이러스 감염예방 차원의 백신 접종처럼 기업들 면역부터 다급하다. 자원봉사자로 선뜻 나서 우리나라 경제·재정 분야를 ‘간언’해야 한다.

필자에겐 휴가 얼룩이 남다르다. 백세 시대, 칠순 문턱도 넘기 전 대학 절친 40년 지기가 3년 전 초여름 장송곡을 울렸다. 4남매 아버지와 국어선생님의 무거운 꾸러미를 풀어내느라 근육 빠진 휴머니즘이었다. “너무 긴 병상휴가를 위로하는 들새 한 쌍, 아침마다 입원실 창 너머로 날아와 고운 노래…” 숨 거두기 전까지 휴대폰을 메운 문자들, 저만큼 먼 거리 될까 두렵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 시나리오가 넘친다. 이젠 관행처럼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휴가문화라고 예외는 아닐 터, 변화에 어떻게 어색할지 아직 멍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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