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5장 6월의 동화
상규는 더 버텨봤자 소용이 없다는 얼굴로 고무신짝을 바닥에 내팽개친다. 한 짝씩 발에 꾀며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상규네를 노려본다.
"형아, 딴 아들이 다 보고 있잖여. 그랑께 어여 가자. 응?"
진규는 둥구나무 거리를 쳐다본다. 둥구나무 거리에는 동네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골목 안에서 빨간색 란도셀가방을 맨 향숙이 나오고 있다. 진규는 윤길동의 외동딸인 향숙이를 보는 순간 빨개진 얼굴로 상규를 잡아끈다.
"빨리 학교 안 갈껴?"
5학년인 향숙이는 다른 여학생들처럼 단발머리를 하지 않았다. 머리를 양 갈래로 길게 따고 분홍색 리본을 예쁘게 단 향숙은 모산에서 유일하게 란도셀가방을 매고 다닌다. 비록 국산이기는 하지만 란도셀가방을 맨 향숙이 상규를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갈껴. 씨……"
향숙은 모산에서 뿐만 아니라 학산국민학교에서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예쁘다. 상규는 향숙이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얼른 눈물을 훔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어머들은 죄다 그짓말쟁이들이여.
철준은 6학년들이 시키는 데로 줄의 맨 앞에 섰다. 내일은 사친회비를 꼭 줄 것 같은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김철준! 너 시방 졸고 있는 거여?"
철준은 교실 문이 털커덩거리면서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철용네를 원망하느라 복도 건너편 창문 밖에 우뚝 서 있는 전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안잤슈."
철준은 정 선생이 군밤을 때렸을 때야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깜짝 놀란 얼굴로 더듬거렸다.
"너, 냘은 틀림읎이 사친회비 내야 혀. 알았지?"
정 선생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군밤을 때린 자리를 문지르고 있는 철준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예……"
철준은 정 선생의 뒤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일어섰다. 한참동안 무릎을 끓고 앉았더니 다리가 너무 저려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얼른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얼굴과 코에 연달아 찍어 발랐다.
교실에서 나 온 승철은 얼굴을 찡그리고 엉거주춤 서 있는 철준을 바라본다. 토요일 모산을 가면 가끔 같이 또랑에 가서 고기도 잡기도 하고 둥구나무꺼리에서 마부리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는 학산이다. 철준이 아니더라도 같이 놀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이내 시선을 돌리고 밖으로 나간다.
"나, 아이스께끼 사 먹을껀데 따라 갈 사람."
승철의 뒤를 이어 따라 나온 아이들이 금방 승철을 에워쌌다. 승철은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정품 란도셀 가방을메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책보를 허리에 묶었거나 등에 걸치고 있었다. 승철이 어깨를 으쓱 거리며 거들먹거렸다.
"승철아, 나도 너 따라 가믄 아이스께기 한번 빨게 해 줄텨?"
"생각해 보고."
"승철아 가방 인줘. 내가 들고 갈팅께."
"이승철 너, 마부리 줄까?"
승철을 따라가는 아이들은 승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앞을 다투어 한마디 씩 하며 복도를 우르르 빠져 나간다.
"승철아……"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