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접시꽃이 피어 있는 풍경

▲ <삽화=류상영>

이웃들은 설 전날부터 부침을 한다, 가래떡을 한다, 두부를 한다, 술을 빚느라 분주하기만 했었다. 설날에도 대문 밖에는 때를 지어서 세배를 다니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발자국소리부터 두루마기를 걸친 어른들의 묵직한 발자국소리가 밤이 늦도록 계속됐었다.

하지만 들례는 동네 개들까지 이리뛰고 저리뛰며 골목을 누비던 낮에는 춘임이와 심심풀이 화토를 쳤다. 밤에는 자식이래도 자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승철을 그리워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었다.

토요일 날 설을 쉬로 모산에 간 이동하가 월요일 설을 보내고 화요일 저녁에도 오지를 않았다.

둘레는 저녁때라도 이동하고 불쑥 들어서면 지난 사흘 동안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던 기분을 보상 받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동하는 이렇다 할 연락도 안하고 모산에서 머물렀다. 술에 취해서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서운한 감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지나간 봄부터 와 있기 시작한 승철이라도 일찍 왔었으면 덜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은데 화요일까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서 승철이도 오지 않았다.

대관절 언지까지 이릏게 살아야 하능겨……

이동하하고 같이 먹으려고 준비한 떡국은 팅팅 불어서 멀건 풀죽같았다. 그것을 힘없이 한 수저씩 떠먹고 있으려니까 신세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자식을 자식이라고 부를 수가 있나, 서방을 서방이라고 부를 수가 있나. 그렇다고 내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은 저녁마다 이동하의 품에 안겨 꿀잠을 잘 거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서울역전이나 종로 삼가의 창녀들처럼 이동하가 부르면 설레는 마음으로 안방 문을 열고, 아무런 기척이 없으면 건넛방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다보면 날밤을 새우기 일쑤다. 잠자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은 유부남 유부녀 간에도 통정을 할 때도 아줌마, 아저씨가 아니고 여보, 서방님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동하는 밥상 앞에서도 부면장님, 이불속에서도 부면장님, 위에서도 부면장님 밑에서도 부면장님이라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명절 끝에 쓸쓸한 기분으로 식어빠져 퉁퉁 불은 떡국을 먹고 있자니 내가 왜 이 집에서 살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성주옥의 기생이라면 팔자가 그러려니 하고 술잔이나 기울이며 뭇 남정네들 품에 안겨 세월을 보낸다고 하지만 기생의 신분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염집의 가정주부도 아니면서 첩의 흉내를 내고 있다. 첩도 아니면서 어염집의 가정주부 흉내를 내며 명절 끝에 식모하고 겸상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처량하다 못해 한심하고 한심하다 모못해 불쌍하기까지 했다.

"너, 즈녁 상 치우고 날망에 가서 꼬막네 좀 오라고 혀."

들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너무 처량하고 한심하다 못해 화가 났다. 떡국을 먹다 말고 수저를 내려놓고 물러앉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껍데기로만 살수 없었다. 나이 이제 겨우 서른 한 살이다. 남은 인생이라도 사람답게 살려면 무언가 수를 내야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져 먹었다.

"나 혼자만 명절 끝에 적막강산에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방에도 있었구먼."

들례의 애간장을 까맣게 태워 버린 꼬막네가 춘임이 뒤를 따라 싸락눈 속을 걸어 들어왔다. 들례는 운동회 날 부채춤을 추는 아이들처럼 노란저고리에 빨간색 치마를 입고 들어오는 꼬막네를반갑게 맞이했다. 밤중에 찾아오는 남정네도 없을 터인데 동백기름을 자르르 바른 꼬막네의 머리카락 위로 싸락눈이 허옇게 앉아있다.

"춘임이 너는 어여 술상 좀 바와."

"명절 끝에 술대접 할라고 날 부른 거는 아닐테고, 동무삼아 밤 새워 말놀음하자고 부른 것은 더욱아닐 테고. 부면장님이 나이도 한 살 더 잡샀응께 올해부텀 남남하자고 통보라도 보냉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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