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접시꽃이 피어 있는 풍경

▲ <삽화=류상영>

폭풍처럼 달려오던 승철에 대한 반가움을 삭이지도 못하고, 자식이면서도 자식이라 부를 수가 없어서 가슴을 쥐어뜯고 싶어도 참았던 순간들은 차라리 행복한 고통이었다. 승철이를 제 방으로 들여보내고 난 후였다. 이동하는 들례를 안방으로 불러서 나직하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단단하게 못을 박았다.

"지도 그만한 눈치쯤은 채릴 줄 앙께 걱정 놓으셔유. 아무려믄 지가 모산에 계신 어른 가슴에 칼 박을 일을 하겄슈."

"잘 알고 있구먼. 승철이도 너를 유모라고 알고 있을거여. 그릏게 알고 나가 봐."

그 뿐이었다. 이동하의 말은 곧 법이요 목숨 줄이라서 대꾸한마디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승철 또한 자식이 아니고 상전이었다. 언젠가 승철도 핏줄을 느낄 때가 올 거라는 생각에 끔찍이도 위해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귀찮게 굴지 말라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뿐이었다. 그런 승철이 명절이라고 옥천댁한테 세배를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하며 즐거워 할 것을 생각하니까 새삼스럽게 눈물이 자꾸만 솟구쳤다.

"밤을 새워 운다고 정에 맥힌 가슴이 뚫어질까. 백날을 운다고 자식이 지 어미를 알아볼까. 백날천날 울어봐야 면장댁이 쪽박을 차기 전에는 세상이 안 바뀔껴. 그랑께 탁주나 한잔 하고 날 부른 이유나 말해봐. 혹시 알아? 내가 한 맺힌 가슴을 확 뚫어 줄지?"

"꼬막네가 용하다는 건 이미 내가 잘 알고 있응께 본론만 야기 할꺼구만. 음력으로 구월 스무날이 부면장님 조부 지삿날여……"

들례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치마의 눈물고름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길게 한숨을 쉬고 난 후에 꼬막네를 향하여 돌아앉았다. 어서 말을 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막네의 얼굴을 바라보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을 했다.

"머여, 시방 부면장님 조부 지삿날 참석을 하게 해 달라는 말여?"

들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막네가 깜짝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춘임의 말을 듣고 집을 나설 때는 간단하게 비방이나 한 가지 알려 줄 생각으로 싸락눈을 맞으며 부담 없이 내려왔다. 하지만 눈치를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제사에 참석하게 해 달라면 며느리가 되고 싶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며느리가 되려면 옥천댁이 없어야 한다. 상황이 예상 밖으로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도 주제파악을 할 줄은 알구먼. 옥천댁이 시퍼렇게 두 눈뜨고 살아 있는데 언감생심이지. 난 그저 지삿날 그 댁에 가서 음석이라고 해줄 수만 있다믄 더 이상의 소원은 읎어."

들례는 승철이 이 씨 집안 제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돌려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겄네. 지삿날이 은젠데?"

꼬막네는 단순히 정지에서 음식을 만드는 정도라면 시도해 볼만하다는 생각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음력으로 구월 스무날잉께 양력으로 시월달 쯤 되겄지."

"부면장님 시방 나이가 워치게 되능겨?"

"내 후년이믄 꽉 찬 마흔이여."

"생일은?"

"음력으로 오 월……"

"날짜는 필요 읎고……서른여덟 살이라고 했응께.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말띠구먼. 말띠에 오월 생이다……마나님은 생월이 은제여."
"사월 생일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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